드라마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라스트 세션」

2020년 08월 11일

라스트 세션
마크 세인트 저메인 극본, 오경택 연출 | 90분 | 2020

독일을 상대로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한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가 루이스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진 문학가 C. S. 루이스가 펼치는 90분의 대화. 문학을 꿴 신앙─고통─성(性)─죽음─삶 그리고 신(神)을 논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번쯤 물어봤을 신의 존재 앞에서 하고 싶었을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신이 살아 있다면 왜 인간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예수는 신이 아닌 정신병자 아닌가. 그럼에도 보편적 도덕률은 존재하지 않는가. 들키면 그만일 예수의 죽음이 조작일 근거가 있는가….

ⓒ파크컴퍼니

두 사람의 대화는 관객들을 두 의견 중 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vs과학의 측면이기에 충분히 그렇다. 하지만 이제부터 뻔한 기독교vs과학이란 프레임을 벗어나 루이스를 낭만주의, 프로이트를 현실주의로 대입해보면 단순해 보였던 신의 존재 유무와 확연히 다른 결들이 보일 것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좋아하는 배우, 극의 서사를 넘어 굿즈(goods)라는 시장과 유튜브와 블로그 리뷰, 파생되는 밈처럼 새로운 현상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기저에 흐르는 내러티브(narrative)는 이야기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적잖은 역할로 기여한다. 성서에 흐르는 고전적 메시지가 동물원으로 향하던 루이스의 삶을 바꾼 ‘사건’처럼. 이야기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듯이.

기독교적 가치가 흩뿌렸던
전체주의 시대를 바라보며
생각해본 내러티브의 가치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함께
앉아 힘껏 호흡한 것처럼,
‘공동의 공간’ 발견하기를

 

그렇다고 드라마가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 드라마로 교훈을 얻고, 삶의 가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가 정치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한계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구원, 성장을 강조했던 복음주의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매머드급 교회 성장을 이뤘지만.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물결이 등장하면서 더는 기독교의 내러티브가 전 세계를 구원하지 못하는 역설에 직면했다. 반 지성주의를 배격하는데 기독교 신앙이 거론되고 “소설 쓰지 말라”가 농담처럼 튀어 오르듯 내러티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내러티브는 기독교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아리아 민족의 위대함을 설파했던 민족성, 영토를 수복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하는 희생자 의식, 조국과 박근혜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공동체 내러티브는 사람을 격동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파국(破局)을 만든다. 곧이어 내러티브는 힘을 잃는다. 현실을 거론하며 내러티브의 허황됨을 폭로한 프로이트의 냉철한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하지만 내러티브는 죄가 없다. 여전히 드라마는 아름답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삶을 생기발랄하게 만드는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미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지냈던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하루 한 날을 내러티브로 보여준 오늘의 연극처럼. 방독면을 쓰려던 루이스를 보면서 전쟁을 앞둔 나약한 인간의 슬픔을 보듯, “선생님을 놔두고 가지 않으리라”는 고함 속에 너만은 살라고 손사래 치는 프로이트. 그리고 구강암의 사투에서 고생 끝에 빼내버린 교정기를 놔두고 친구처럼 지쳐 쓰러지자 들려오던 서로의 호흡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공연하던 내러티브 속에서 서로가 마주한 공동의 공간을 발견했다. 현실과 낭만의 사이에서 끊임없는 물음과 대화를 이어가야 할 이유도 공동의 공간을 발견한 덕분이다. 한사코 듣지 않겠다던 음악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들으며, 루이스의 말을 곱씹던 프로이트의 뒷모습에서 침묵이란 여운을 느꼈다.

예스24스테이지 3관, 9월 13일까지 공연.

 
자유의 새노래

자유의새노래

정론직필의 자유·시대성의 창달·주체자의 기록

답글 남기기

Previous Story

지금껏 개발된 퍼피레드M… 기존 퍼피레드와 동일했다

Next Story

미운오리새끼의 힘없던 눈빛이 가장 정확했다고:「미운오리새끼」

Latest from 리뷰

같은 얼굴, 두 자아… 소녀의 가면과 ‘기믹’: 「갈증」「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극단적이고 거침없는 여고생 심미적 즐거움의 코마츠 나나 거침없는 캐릭터, 낯설지 않은 같은 얼굴. 허나 한쪽 이야기는 달달했고, 남은 이야기는 쓰디쓰다. 같은 얼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코마츠 나나(小松 菜奈)의 연기력에 흡인력을 느끼고 말았다. 갈증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청소년 관람불가2014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나가이 아키라 감독15세+2018 중년 남자를 대하는 여고생의 얼굴이 대조적이다. 갈증(2014)과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2018)은 욕망하는 여고생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아버지마저도 홀리는 딸 카나코를 추적하는 생물적인 욕망을 갈증이 표현했다면 사랑은에선 좌절된 꿈과 묵묵히 현실을 견디는 중년 가장에 대한 아키라의 동경심을 투영했다. 사랑은의 교훈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시간을 교훈에 담아 선사했다면, 갈증은 교훈 따윈 없다고 빅엿을 날리는 감독의 분명한 의도에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교훈이 없다는 의도조차 의도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런 사람도, 이런 감독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보는 사람의 에너지까지 빨아들여 결국 기진해지게 만드는 작품”(이동진, 2014)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환희… 헤이맨의 ‘블랙 스테이지’: 「STAGE 100」

가슴을 울리는 드럼, 전율을 부르는 일렉기타. 인디밴드 헤이맨(Heymen)의 무대에 가슴 뜨거운 환희가 불붙기 시작했다. 26일 저녁 7시, 헤이맨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무대 중앙에는 ‘STAGE 100’이 빛나고 있었다. STAGE 100은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는 NC문화재단의 예술 플랫폼으로, 청년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다. 12월의 주제는 ‘환희’였다. 이날 헤이맨은 에너지 넘치고 강렬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헤이맨은 공연 주제로 ‘환희’를 선택한 까닭에 대해 “처음 밴드 공연을 봤을 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었다”며 “그 감정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날 [짝사랑], [행복의 나라로], [We know nothing], [Passion and Moving], [포토그래피], [Gatsby], [행운을 빌어요] 등 약 8곡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호응했고, 즐거운 리듬에 흠뻑 젖었다. 마지막에는 관객이 기립한 채 신곡을 듣는 장면도 연출됐다. 기타리스트 테리킴은 자신이 쓰는 일기에 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말문을 열며 꾸준함과 기억에 대해 전했고, 보컬 도영은 이번 콘서트의 주제를 설명했다.

아일랜드… 날 바꾼 건, 前남친도 前직장도 아니었어: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김경연 감독 | 7부 작 | 15세+ | 2024 애초에 이미나는 아일랜드에 관심이 없었다. 난생 처음 관심을 가진 아일랜드에 대한 환상은 모두 ‘전 남친’ 작품이었으므로. 아일랜드행 직항은 없다. 경유조차 쉽지 않은 길이다. 내가 원하는 걸 찾고, 내가 바라던 인생길처럼 그 나라에 가는 방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작품은 웹드라마 ‘좋좋소’ 스핀오프로 이미나 대리의 연애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했다. 유구한 연애사의 기원은 어머니의 결핍에서 비롯한다. 맏언니에게 쏠린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은 밀도 높은 ‘주는 이’ 관계보다 ‘받는 이’의 관계를 낳았다. 첫 남친 연우(배우 임현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퍼주는 연애를, 흑맥주를 맛보여준 세준(고도하)과 사고뭉치 하준(이태형)은 미나에게 환상을, 수혁(문시온)과 재홍(박도규)은 현실을 일깨워줬다. 그럼에도 미나의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에 변화를 준 건 ‘내 안의 결핍’이었다. 미나의 오랜 연애사를 톺아보며 아일랜드는 전 남친의 작품이면서도 인생의 토대라는 교훈을 마주하게 된다. 결코 지난날의 연애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자기 성찰의 시작점이 된다는 점에서 연대기적 톺아보기는 모두에게 유효하다. 무뚝뚝한 건 표정만이 아니었다. 딱히 끌리는 것도 없고 인생에 대한 열정조차 없는 그저 그런 미나의 삶도 표정과 빼닮았다. 누군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꿈도, 미래도, 방향 대신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같은 삶. 과연 미나는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았을까. 아일랜드에서 돌아와 첫 남친 연우를 다시 만나며 주고 받은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막상 가보니까 알겠던데? 음, 나는 여기 오고 싶었던 게 아니었구나.” 결국 자기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는 건 전 남친도, 전 직장도 아니었다. 고독을 씹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냉엄한 시간, 0.1도씩 틀어가던 아일랜드에서.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Go to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