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 08. 29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지음 | 흔 | 208쪽 | 1만3800원
죽음은 가볍지 않다. 우울증도 그렇다. 그 둘이 만나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어둡고, 우울한 두 단어가 한 문장이 되자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애매모호한 우울증 환자’ 심리를 잘 묘사한 제목이 아닐까.
저자 백세희 씨는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겪은 환자다. 저자 소개에서 눈치 챘을지 모르겠다.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괄호에 넣었다.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에 시달렸다’고 소개해, 분명 우울증 환자일 테지만 사회에서는 ‘애매모호한 우울증 환자’임을 서두에서 밝혀둔다.
우울증 환자인 저자와 정신과 전문의가 병원에서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치료 기록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지만, 우울증이란 다소 어두운 주제를 구술로써 지면에 담아 읽기 편하다.
◇완벽함을 요구하는 심리
어떻게 왔냐고 질문하자, 저자는 자신이 느꼈던 심리와 감정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대화는 어느덧 자신이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고, 수많은 원인 중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완벽함을 요구하는 심리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수하더라도 웃으며 이 같이 말하곤 한다. 전문의가 “로봇 같다”고 표현하기 전까진 자신을 CCTV 찍듯 검열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를 되 뇌이지만 정작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이분법 세계’에선 ‘악담을 퍼붓는 착한 사람’이란 존재할까
‘완벽하다’가 있다면 ‘완벽하지 않다’도 존재한다. 저자 내면에는 ‘완벽함’과 ‘완벽하지 않음’이 존재했다. 저자는 왜,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를 알면서도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했을까. 그에게 중간이나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저자는 이분법 세계에서만 살아왔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화가 난다, 기쁘다. 칭찬, 악담. 모든 행동과 사람을 카테고리로 정리하기 쉽다. 정작 덜 나쁜 사람, 덜 착한 사람. 화난 착한 사람, 나에게 친절한 사기꾼은 범주로 정리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자신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환자’로 보지 못해 내면에 존재하던 애매모호한 우울과 기분을 규정하지 못했다.
이분법은 잘못된 방법론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를 단순하게 보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하지만, 사회 모든 현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게 되면 복합적 문제를 풀지 못한다. 만일, 저자 역시 저서를 준비하면서 ‘애매모호함’이라는 이분법 세계에서 사용되지 못한 새로운 용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자신을 ‘애매모호한 환자’로 규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판단 오류에, 재해석이 필요해!
적지 않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단점을 ‘피해의식’으로 꼽는다. 이분법 세계에선 적당히 착하거나, 적당히 나쁜 게 존재하지 않다. 따라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 짓는데, 해치는 존재이거나 잘 대해주는 존재로 구분한다.
전문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술에 취한 저자에게 직장 상사가 술에 취했으니 집에 돌아가란 말을 분위기 해치니까 집에나 가라로 해석한 경우다. 전문의가 질문한다. 걱정 돼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저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무릎 팍!
의외로 저자는 자신이 판단을 잘 못한 결과임을 받아들인다. 판단 오류는 우울증 환자만 저지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중요한 건, 판단 오류 중에도 웃으며 오류를 수정하거나 고칠 용의가 있느냐는 것.
여러 차례 피해의식이나 판단 오류를 고치려고 자신을 다그치기까지 하는데, 저서를 읽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아쉬운 게 있다면
서두에서 전문의와 대화한 내용이라 가독성이 좋다고 밝혀뒀다. 대화문이라 해서 마냥 가독성이 좋은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검열했겠지만 저자와 전문의는 입말로 구술했고, 구술을 지면에 담았기에 여성 화법을 모르는 독자에겐 다소 난해한 문장도 있다.
“맞다”를 네 번 연속 외치거나, 웃는 장면 등 여성 입장에선 실제 대화하는 듯 분위기를 선사하지만, 여성을 잘 모르는 남성에겐 두 번, 세 번 읽어야 할 부분이 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아쉬운 점이 에세이란 특성과 합쳐 강점으로 다가왔다. 바로 타자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화한 내용을 계속해서 곱씹어야 할 자세다. 전공이 다르거나 특정 분야만 다룬 전문서적이면 모를까, 에세이기 때문에 저서에서 어려운 내용은 없다.
가독성이 나쁜 건, 때로 글을 두 번, 세 번 읽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저자는 여성이며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서 사용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저자가 문장을 가다듬지 못한 책임일 테지만, 대화할 때 사용된 말투와 맥락을 구구절절 지면에 풀어 놓을 필요는 없다. 무작정 여성인 저자 탓만 한다면 이런 행동이야 말로 이분법 세계로만 저자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아닐까.
◇‘다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 같은 타자 이해를 깨달은 배경에,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가슴 아려오게 했다. 목차는 총 12개로 구성된다. 소개에서도 12주간 치료 내용을 담았다기에 총 12주만 치료한 것 아닐까 싶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간략하게 읽은 저자 소개마저 잊고, ‘뭐야, 치료 별로 안 했잖아’라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그 10년의 세월을 앞에 두고, 너무도 가벼운 책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견은 저자를 12주만 치료 받고 책을 낸 저자로 오독하게 만들었다.
에세이라고 저서를 쉽게 생각한 것처럼 때론 우울증 환자를, 일반인보다 못한 존재로 오해하곤 한다. 이들에게 우울함은 비오는 날, 괜히 슬퍼지는 감정과 차원이 다르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다른 감정으로 비통에 빠진 이들을 우린, 그동안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한 게 아닐까.
타자 이해라는 건. 오랜 시간, 천천히, 기다림과 침묵, 고독 속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함께하는 행동이 아닐까.
다음 문단 스포일러 주의
◇우울증, 현재진행형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느낀 건 ‘마치는 글’에서였다. 저자답게, 민낯을 과감히 드러냈다. 어쩌면 이 책 전체가 그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일지 모른다.
우울증 환자에게 내일은 또 다시 우울할 고통스러운 가까운 미래다. 나아진 것 같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밝은 곳을 바라본 것 같으나, 여전히 죽음의 심연을 바라보며. 겉은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젠틀한 존재겠지만 속은 헝클어진 머리, 썩어 부패한 마음이란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저자는 여전히 우울증 환자다. 오히려 첫 장보다 현상은 심해졌다. 현재진행형일 민낯을 과감히 드러내며 꾸밈없는 자신을 드러냈다. 현대 사회는 얼마나 아름답고, 멋지게 사느냐를 자랑한다.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이들은 패배감을 느낀다.
패배감을 느낄 필요가 없음에도 논리적 이유와 달리 패배감과 무기력을 느낀다. 그 어리석음에 현재진행형이란 꾸밈없는 자신을 내 던짐으로서 사회에 귀감과 감동을 선사한다.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훌륭했다.
“내가 바라는 거?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의심 없이 편안하게. 그뿐이다. 방법을 모르기에 괴로울 뿐이다. 마지막 진료기록을 마무리하고 맺음말을 쓰지 못한 채 한참을 헤맸다. 내가 이만큼 좋아졌다는 걸 보여주거나, 뭔가 대단한 마무리를 짓고 싶었던 것 같다. 한 권의 책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마치는 지금도 여전히 우울과 행복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싫었고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 상태로 병원을 오갔고, 어느덧 2018년이 되었다(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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