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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연속변침, 21초의 비밀 “이것이 진짜 침몰의 원인이다”:『연속변침』

자유의새노래 2018. 1. 20. 20:32

입력 : 2017. 01. 24 | 지면 : 2017. 01. 24 | A18

 

 

연속변침
이동욱 지음 | 조갑제닷컴 | 732쪽 | 1만9800원

 

“선수 우측에만 있던 카램프를 철거함으로써 배는 좌우의 균형을 잃은 절름발이 상태가 됐다. 안전 위주가 아닌 사익 위주의 개변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29쪽).”

 

이동욱 기자가 쓴 ‘연속변침’에는 ▲세월호의 개·변조 ▲출항하기 전과 출항의 과정 ▲변침과 전복 과정 ▲침몰 후의 상황 ▲탑승자 476명 ▲다이빙 취재 ▲항적도로 본 침몰 ▲김경일 정장에 관한 변론 ▲해양경찰 구조대원의 증언을 수록하고 있다.

 

‘세월호의 진실’로 둔갑한 언론사들의 주장이 난무한 2014년 4월은 책임 없는 시기였다. 이 기자는 “세월호 사건 직후 도처에서 짐꾼(porter․리포터에 대비) 같은 기자들이 맹활약하고 있었다. 검증도 없이 소문이자 주장을 마구 실어 나르고 심지어 감상적인 각색까지 경정하듯 했다… 3만 명 가까운 기자들이 살던 시대에 대형사건 하나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직접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이동욱 기자가 바닷물에 들어가기 전, 바지선에서 촬영한 장면. 4개월이 지난 후인 2014년 8월 24일, 물이 가장 맑고 잔잔할 때다. ⓒ정규재TV

 

 

◇ 세월호 침몰 원인과 ‘재난의 확산’ ①중고 로로선으로 수입한 세월호의 개·변조와 과적의 실태

“선수 양 옆면에 ‘SEWOL 세월’이라는 검은색 선명이 두 줄로 크게 쓰여 있고 선미 쪽으로는 해운사 이름을 두 줄의 영문으로 표기한 CHONGHAEJIN MARINE COMPANY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31).”

 

대만 ‘초에이조선’에서 건조 된 ‘페리 나미노우에’ 로로선(Ro-ro ship)은 훗날 ‘중고’로 2012년 10월 8일, 청해진 해운이 수입했다. 세월호를 건조한 선박회사인 ‘초에이조선’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선박회사가 건조한 세 척이 복원력 취약으로 전복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검찰 공소장에서의 세월호 중개축 관련 내용을 발췌하며 “이처럼 3, 4, 5층의 객실을 증설해 기존의 정원 740명보다 181명을 더 태울 공간을 마련했지만 선박 도면엔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반영시키지 않아 침몰 후 잠수 수색과정에서 해경은 애를 먹게 된다. 5층 객실에는 사주인 유병언 씨를 위해 무거운 대리석판을 바닥재로 장식한 전시실도 설치됐다. 이런 개조 작업으로 선박의 무게도 239톤이나 증가하게 됐다(44).”며 개‧변조를 지적했다.

 

개‧변조와 함께 ‘절름발이’ 로로선임을 밝힌 이 기자는 해양안전심판원의 특별조사보고서를 인용하며 비정상인 세월호의 운항허가 취득 과정을 설명한다. 모든 과정은 “지능적 방식의 무력화(47)”였다고 기술한다.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 6.264m를 넘긴 세월호 화물의 총량은 2142톤. 적재적량(1077톤)의 두 배다.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 통과를 위해 평형수 804.6톤, 연료유 362.52톤, 청수 140.9톤 등 총 1308.2톤을 덜어내 만재흘수선의 합격선을 맞췄다. 화물을 뺀 게 아니라 평형수를 빼서 복원력을 잃게 해 ‘외날 스케이트 위의 화객선(58)’으로 비유했다.

 

화물의 과적뿐만이 아니다. 선박을 고정하는 ‘고박 작업(라싱‧Lashing)’은 역부족이었다. 세월호에 승인된 차량적재는 97대였지만 당일 158대가 실려 있어 라싱 밴드 네 가닥의 규정을 두 가닥으로 줄였다. 컨테이너에는 트위스트 락, X자 라싱 바, 버클은 사용되지 않았다. 3등 항해사인 박한결 씨는 화물 고박 상태를 점검하지 않았다. 이 기자는 “하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64p)”이라고 지적한다. 3항사의 권한으로 출항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돈의 문제였다.

 

 

세월호 취재 전에 든 생각

“3만 명 가까운 기자들이 살던 시대에

대형사건 하나 제대로 기록 못했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세월호 침몰 원인

① 중고 로로선을 수입, 개·변조하다. 선박업체 ‘초에이조선’은 세 척이나 복원력 취약으로 전복한 사례

② 과적을 위해 평형수를 빼 복원력을 잃게 했고, ‘고박 작업’ 마저도 부족

③ 평소보다 2시간 30분 늦어 물살이 센 맹골수도를 3등 항해사가 운항

 

해경은 최선을 다했다

언론은 “해경이 늦어 구조 못했다”는 오보 냈으나 이는 사실과 달라

헬기가 자체 편제에 존재하지 않아 구조 세력, 육로를 경유하느라 현장까지 늦어

가장 먼저 도착한 P123정은 생존자 45%인 79명을 구조, 잠수 구조세력에게 출동명령이 먼저 하달 되기도

 

직접 세월호로 향한 李 기자

기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유실 방지망 점검’

임무 마치고 40㎏ 장비를 메고 올라오는 길 힘들었다

해경, 민간 업체와 센 조류 속에서 295구 시신 건져… “세계 구난사에 존재하지 않은 기록”

 

 

◇ 세월호 침몰 원인과 ‘재난의 확산’ ② 평소보다 2시간 30분 늦게 출항함과 맹골수도에서의 박한결 항해사의 연속 변침

운이 나빴던 것일까, 세월호는 예상 시간보다 늦게 출항했다. 해무(海霧)가 껴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의 해무는 위험하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2층 204호의 ‘인천항 운항관리실’에서 창 밖 북쪽에 위치한 ‘홍색 등대’로 시정(視程)을 확인했다. 해무가 껴 있음에도 청해진 해운사는 일탈 했다. 세월호 침몰 과정을 취재하는 동안 자주 인용하고 언급하는 김대현(생존자‧34세) 씨를 통해 2014년 4월 15일 오후 7시 30분, 즐거움에 겨워 세월호에 탑승했음을 기술한다. 그리고 밤 8시 50분, 시정은 1㎞ 이상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출항하게 된다.

 

좌측으로 넘어갔다 바로 서는 과정을 겪으며 “외날 위의 스케이트” 항해를 한 세월호는 다음 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제주도로 향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 책의 제목인 ‘연속변침’이었다. 결정적 문제를 야기한 원인은 늦은 출항이었다. 배의 취약한 시간은 일출과 일몰 시간 전후로 새벽 4시~오전 8시까지다. 이 시간대의 근무는 1등 항해사인 이준석 씨다. 그 다음 근무자는 3등 항해사 박한결 씨였다. 평소대로라면 도착지인 제주항 부근이지만 2시간 30분 늦게 출항한 탓에 물살이 가장 센 맹골수도를 박 씨가 운항을 지휘하게 됐다.

 

맹골수도에서의 조함 경험이 없는 박 씨는 병풍도를 지나 처음 우변침을 했다. 입사한 지 4달 됐기 때문에 세월호의 문제를 인식할 리 없었다. 이 기자는 “8시 48분부터 21초간 연속으로 두 번에 걸쳐 변침했음(484~512)”을 밝혔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스러졌다. “선장을 부르기 위해 콘솔박스 위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배가 크게 기울자 잡았던 수화기를 놓쳐버린 채 좌현 벽면으로 쓸려 내려가 세게 부딪혔다(111).” 기울어진 세월호를 보고 넘어진 이준석 선장은 박 항해사에게 “힐링해라 힐링해!”라고 소리쳤다. 비틀거리며 콘솔 박스로 접근해 힐링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선체의 균형을 잡을 밸러스트 탱크엔 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는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 ‘어찌할 수 없이’ 길을 돌아간 해경, 남하한 P123정의 극적인 구조

언론은 침몰한 세월호를 두고 해경을 향해 “해양경찰이 늦어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보도로 공격했다. 이는 사실과 다름을 이 기자가 밝혔다. “P123정은 약 25분 뒤 현장에 도착해 한 시간여 동안 172명의 생존자 중 45%인 79명을 구조해 낼 수 있었다. P정과 각종 선박의 동원령보다 앞서 해경의 잠수 구조세력에게 출동명령이 먼저 하달 됐다(167).”

 

해경의 잠수 구조세력은 총 세 구조단으로 이뤄진다.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 122구조대(9시․출동명령) ▲서해청 소속 해경 특공대(9시 3분) ▲남해청 소속의 특수구조단(9시 20분) 이 중 먼저 도착한 구조단은 서해청 소속의 해경 특공대였다. 목포항 부두에 도착했지만 출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차를 타고서 서해청 핼기장을 경유하느라 11시 15분에 도착했다.

 

122구조대는 헬기를 이용한 구조 임무를 항공 구조대에 이관했고, 특수구조단은 자체 항공세력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해청 소속의 해경 특공대에 비해 늦었다. 애초에 구조할 시간이 확보되지 못한 것이었다. 언론은 이를 감춘 채 “해경이 늦어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오보를 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구조 세력은 9시 30분의 P123정이다. 이 기자는 “사고 접수를 받은 지 30분 만에 구조세력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점은 생존자들에게는 대단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해양경비대 매뉴얼이 사고 접수 후 2시간 이내에 현장 도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해경은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80)”라며 P123정의 구조 역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8시 무렵, 정장 김경일 경위는 ‘오랜만에 남쪽으로 순찰을 한 번 돌아보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독거도 부근으로는 거의 내려간 적이 없었다… 이 배(P123)가 세월호의 자취를 따라 함께 남행하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아침 P123정의 남하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세월호가 위기에 빠졌을 때 최근접 함정으로서 사고 발생 3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하여 침몰 전까지 선체 외부로 나온 승객들 172명 중 79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101).”

 

 

미리 설치 된 유조선(有助線)을 촬영했다. 이 기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유실 방지망 점검’. 희생자의 시신은 9구 남은 상황이다. ⓒ정규재TV

 

 

◇ 이동욱 기자, 세월호를 입수 취재하다

“맨 아래에 오픈워터(Open water·초급다이버), 어드벤스(Advanced·중급다이버), 레스큐(Rescue·구조다이버), 쭉 올라가는데 맨 위가 마스터(Master·상급다이버)입니다. 제가 마스터 자격증을 땄거든요.”

 

정규재TV(2016. 12. 23)에서 정규재 주필은 “이 기자는 지금 마스터 자격증이 있으니까 해경에서 같이 잠수를 해준 겁니다”라고 말하자 “억지로 해준 거지요. 제가 부탁해가지고 매달리고 막….”으로 답했다. 해경은 “위험한 취재(397)”를 허락했다. 그 때가 2014년 6월이었다. 세월호 선체에 다가간 유일한 기자였다. 해경은 거듭 당부했다. “물속에서 100㏔가 되면 무조건 상승해야 합니다. 알았지요?”

 

이 기자에게 유실 방지망 점검의 임무가 주어졌다. 점검이 끝이 났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기자의 두 발에 신겨진 오리 발이 이 잠수사의 머리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만있다가는 좁은 통로에서 두 다이버가 당황한 채 몸을 격하게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호흡 줄이 꼬이는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기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셔서 허파로 부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오리발을 강하게 차면서 올라와야 했는데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잠수사의 머리를 치게 된다(410).” 이 기자는 잠수사의 머리를 치고 “킥을 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임무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은 어려웠다. 40㎏이나 되는 장비를 메고 수면 밖으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종군 기자였다면 기자의 취재를 위해 현역구인들이 얼마나 희생하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좋은 취재가 기자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그 기자의 취재를 도와준 현장의 군인과 경찰의 노고는 제대로 알려진 바 없었다(415).”

 

◇ 가려진 해경의 근무 환경과 그들의 노고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해경의 노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2017년 1월 10일, 세월호에서 인양하지 못한 시신은 9구다. 해경은 민간 구난업체인 ‘언딘’과 함께 295구의 희생자를 건졌다. “계산해보면 드센 조류 속에서 침몰로 인한 304명의 희생자 중 293명(2014. 6. 기준)을 잠수해서 인양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 해양 구난사(救難史)에도 없는 성과다(308).”

 

가장 맑을 때의 시계는 5m 안팎. 바다 속의 세월호 사진이 좀처럼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못하는 이유도 세월호를 가깝게 다가가야 보이기 때문이다. “도면만 보면 이 선체 안에서 왜 못 찾나 싶었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와 보니 이 선체 안에서 어떻게 찾나 싶었다(407).”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며 시신을 찾아 낸 해경의 노고는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의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를 제외, 총 646쪽 분량의 ‘연속변침’은 항적도를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기자는 세월호의 ‘진짜’ 침몰 원인을 “연속변침, 21초의 비밀”로 설명한다. 3등 항해사인 박한결 씨의 근무 시간에 일어난 8시 48분 16초에서 37초까지 이어진 21초의 연속변침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인 셈이다. 조갑제 닷컴에서 출판했기 때문에 한자어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 괄호 안에 친절히 한글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색이 짙은 ‘세월호 특별법’이나 언론에 손을 내밀지 않은 세월호 유가족의 내용이 중점이지 않은 것은 단점이다. 평소 해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라면 그들의 노고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해병대 출신의 박상욱 경장은 이 기자에게 부탁했다. “영웅처럼 써 주지 마시고, 부디 있는 사실 그대로만 써 달라는 겁니다. 전부 구조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해경이 해체된다니까, 그래서 제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제발 사실 그대로만 알려 주셔도 저희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564).”

 

해체된 해경을 보며 저자는 말했다. “해경 여러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