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진 걱정과 불안
그럼에도 “팔짱만 껴도 좋아”
여자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이었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을지로에 있는 커피한약방에 다다랐다. 급하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겨우내 피하고 당근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래도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이번엔 꽤 좋은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언제나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직에 성공하면, 사라질 걱정쯤으로 생각했지만 달랐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나는 이 자리에 여전히 굳건히 서 있을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다. 일을 하는 중에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다. 예상하지 않은 고용 한파에 나는 오랜 시간 백수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여자친구와 만난 지 300일. 을지로 커피한약방이 떠올랐다. 여자친구가 물었다. “불안하지 않아요?” “왜 안 불안하겠어요. 하지만 그때, 일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을지 싶어요.”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여자친구네 집에서 살다시피 지냈다. 오히려 직장을 그만두면서 더욱 가까워진 것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들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다. 그리고 더욱 안정감 있는, 밀도 높은 삶을 이어가게 됐다. 다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도 여자친구는 팔짱만 껴도 좋다고 고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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