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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제목에 심어놓은 ‘조선일보의 의도’ 편집자의 윤리를 묻는다

자유의새노래 2024. 12. 10. 07:00

 

22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최은경의 따뜻한 에세이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단 네 글자였다.


‘부끄럽다’


조선일보와 박근혜를 분리하고 국민과 조선일보를 이입시키는 유체이탈 화법도 놀라웠지만, 내가 정말 놀란 건 단문이었다. 조선일보는 단 네 글자로 부끄러움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3월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현장 조사 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신분을 밝히고 건물에 들어가려 했으나 출입을 50분 동안 가로막았다. 그새 삼성은 관련 자료를 통째로 폐기했고 책상과 서랍장을 바꿔 조사 대상 직원의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꿔치기한 게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음 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이랬다.


‘삼성 눈에는 이 나라 법은 법같이 보이지 않는가’


가끔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제목을 보면 ‘심판자 조선일보’의 우스운 태도가 느껴진다.


조선일보의 제목은 언제나 강렬하지만 그 의도를 들여다보면 권력에 대한 적나라한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 날 신문은 제각각 1면 제목을 다채롭게 달았다.


‘”어찌 됐든 사과” 140분 맹탕 회견’ ‘고개만 숙였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맹탕, 고개만 숙였다고 비판했다.


‘’김건희 의혹’ 부인한 윤, 특검 거부’ 동아일보는 고집부리는 윤석열을 강조했다.


‘아내 처신 머리 숙이고 의혹 앞엔 고개 숙였다’ ‘윤 고개 숙였지만, 의혹엔 고개 저었다’ 국민일보와 한국일보는 대통령의 사과와 의혹에는 고개를 저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만 달랐다.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


마치 윤석열이 정중하게 국민 앞에 사과하는 내용으로 제목을 단 것이다.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가.

 

 

아쉬운 이유
제목 짓는 기술을 기대하고
펼쳤건만 돌아온 건 실망감
‘실무를 좀 더 묘사했더라면’


하나의 교훈
그럼에도 피식 웃게 만드는
조선일보의 엉뚱한 제목들
그리고 등골 서늘하게 하는
이 교훈… ‘제목은 권력이다’

 


제목에 영향을 끼치는 건 편집기자와 데스크의 의도가 절대적이다. 사진과 기사의 배치, 레이아웃, 그래픽 등이 신문의 문법을 드러내지만 가장 직설적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장치는 제목이다.


조선일보의 흥미로운 제목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빛을 발했다. 코로나19를 굳이 ‘우한 코로나’라고 명명한 그 신문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도 백신을 맞읍시다”라고 제목을 단 것이다. 백신의 안정성에 의문을 가하던 조선일보의 논조가 달라졌다.


저자는 제목의 권능을 잘 알고 있었다. 제목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를 너머 편집자가 독자에게 심어주는 명백한 의도를 말이다. 제목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조회수와의 은밀한 관계도 꼬집는다. 잘 짓고 못 짓고를 떠나 저자는 제목의 윤리를 묻는다.
‘22년 차 편집기자가 전하는/읽히는 제목, 외면받는 제목’ 딱딱 맞게 떨어지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편집기자다운 문체다. 


하지만 좋은 건 이뿐이다.


저자는 여러 군데에서 제목에 관한 일화를 본문의 도입으로 사용한다. 읽기에는 편했다. 하지만 좀더 자신만이 겪은 일화를 나열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실무 말이다.


독자들은 굳이 배우 남궁민이 했던 이야기(135쪽 2문단)나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117,1)이 궁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목 짓기에 끌려서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 제목 짓기에 관한 자신이 겪은 실무를 위주로 말하는 것이 옳다.


이 책은 제목 짓기의 기술을 다룬 책이 아니다. 편집기자 최은경의 에세이라 생각하며 읽으면 좋다. 그래도 제목 짓기를 맛보고 싶다면 읽어보고, 정말 제목을 잘 짓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특히 편집기자가 되려면 굳이,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


저자는 편집기자이지만 지면신문을 만드는 편집기자가 아니다. 딱히 공감될 만한 구석은 없었다. 선배에게 “제목 다시 뽑아봐”(172,2) 소릴 들었을 때의 씁쓸함은 빼고.


지면신문의 강점은 제목을 다양한 기법으로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정된 자리에 제목을 어떻게 심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에 비해 디지털판(인터넷) 기사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어 밋밋하다. CSS를 건드리면 일괄적으로 바뀌므로 정해진 디자인 포맷으로 제목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제목에 끌렸고, 부제목에 사로 잡혔으며, 첫 장에서 나오는 고경태 기자의 “제목은 심는 것”이란 문장에 이 책을 집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권양숙 여사의 20촌쯤이나 되는 사람을 끌고와 기어이 ‘상품권 발행 코윈 주식관련 전 청와대 행정관 “권양숙 여사와 한동네 출신 먼 친척”’이라고 제목을 단 조선일보의 기사는 언제봐도 재미있다.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 것 같다. 조선일보가 보여준 사례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제목이 권력과 의도를 담아 내는 도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책은 제목의 윤리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실무적 통찰보다는 개인적 일화에 치우친 점이 무척 아쉬웠다. 그럼에도 제목을 통해 권력을 비판적으로 읽는 눈을 키우는데 나름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제목은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