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재현아, 야식 먹으러 와라!”
맞은편 박 선배네 방에는 여러 선배들이 야식 먹을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내가 껴들어도 되나 싶었다. 헬스에 미친 장 선배, 민주당 지지자 박 선배, 기도원에서 살다시피 하던 대풍이까지.
박 선배네 방은 박근혜 지지자에 보수적 신앙인이던 나를 품어주는 곳이었다. 2013년 대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 새내기에게 군기 대신 야식 챙겨주는 고마운 선배를 만났다.
이듬해 2학년 근대교회사 시간, 교수의 그 말 한 마디에 박 선배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세월호도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자제해야 하죠.“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발끈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교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인 건 맞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봤다. 선배는 달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던 교수의 손가락 끝에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아닌 유가족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억울하게 죽음을 경험한 유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더 나은 복지를 꿈꾼 사람이기도 했다. 학생복지위원회가 선배의 손으로 꾸려졌다.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섰지만 아쉽게도 낙선했다. 때론 팩트폭행도 서슴없었다. “그 선배 참 영적인 사람 같다”던 말에 “그리 쉽게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실수 할 뻔한 내게 충고를 던지기도 했다. 매일 밤마다 카페 알바 하느라 삶이 고돼 보였다. 자정 넘어 몰래 문 좀 열어 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 기숙사 층장이 없을 정도였다.
신학생이라고 다 같진 않아
힘들 땐 술 한 잔 걸치기도…
다채로운 정체성 스펙트럼
나와는 생각이 다를지라도
정겹던 “야식 먹으러 와라”
그 선배들은 뭐하며 지낼까
방 맞은편에 살던 박 선배는 시간 날 때마다 나를 불렀다. 바쁜 시간 짬 내어 맛있는 것 좀 먹으라고 초대한 것이다. 선배가 민주당을 지지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가 맞는 말 했다고 생각했어도 저런 말은 선배가 듣기에 몹시 거북하겠구나 생각했다.
거기에다 같은 정치 성향의 장 선배, 무신론자 Y 선배, 새벽까지 롤이나 처하던 서 선배, 꼭 나한테 군기나 잡던 김 선배… 소명을 가지고 신학교에 입학한 신학생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헤매고 헤매던 이도 있었다. 기숙사에서 일찍 나와 복사실로 향했다. 신학생이 쓴 걸로 보이는 아래아 한글 파일이 열려 있었다. “내가 왜 이 학교에 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버지가 목사 됐으면 좋겠어서 왔다 (……)”
선배들이 하나 둘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교에는 선배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뿐이었다. 학점 챙기느라 후배들 챙겨줄 겨를도 없었다. 나는 선배들처럼 후배에게 밥 사주고 야식 챙겨주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빌런에 가까웠다. 아니 빌런 그 자체였다. 한 후배와 어쩌다 친해졌다. 신학교 생활에 압박감을 느낀다더라. 아버지가 명망 있는 목사라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나와 함께라면 압박에서 벗어난다는 고백을 들었다. 밖에서 고기에다 술 한 잔 곁들였다. 언제는 떡이 되어 내 방에 찾아와 침대에 다짜고짜 누운 일도 있었다.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몇 마디 잠꼬대에도 조용히 뉴스를 보았다. 지나가던 후배들은 한숨이나 눈치를 주었다.
그는 외국어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5개 국어를 능통하게 할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출중한 능력을 가졌어도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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