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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마운 이름들] ④“가현동 어느 골목이었습니다. 감자탕집 아저씨는 길 잃은 절아들처럼 저녁 차려 베푸셨죠.”

 

 

 

그 여름도 상당히 더웠다. 푹푹 찌는 살갗에서 감도는 짠맛과 흙냄새로 뒤덮으며 나는 냄새. 가만히 있어도 땀 한 방울 흐르는 등줄기를 느끼며 동네 골목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걷는다. 가현동 집골목 사거리만 건너면 곧바로 태장2동 바둑판 골목이다. 지금의 내 걸음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만 5살 꼬마가 걷는다면 얼마 만에 도착할까.

해도 뜨지 않는 새벽, 어린이집 봉고차 탈 생각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분명히 한 시간 전이라면 더 자고도 남을 시간일 텐데. 일찍부터 씻고 옷을 갈아입을 채비에 나섰다. 장롱을 열어 흰 옷을 꺼내고 엄마가 깨지 않게 조용히 갈아입는다. 대문을 열어 한적한 이차선 도로, 콘크리트 벽에 바짝 붙어서 지평선이 보일만치 직선 도보 걷는다. 

집 앞까지 와주는 운전 선생님 힘들지 않게 대문에서 다섯 발걸음 더 걷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다섯 발걸음은 열 발걸음, 백 발걸음 아예 5분 걸어 사거리에까지 넓어졌다. 어느 날 집 앞도 아닌, 걸어걸어 사거리에까지 서 있는 꼬마를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놀랐을 것이다. 걱정된 나머지 짚 앞에서 기다려도 된다는 말씀을 어머니한테 전달하고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밖을 나서지 못했다.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더위에 바둑판 골목으로 걸어가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동지들을 만나면 사라질 더위였다. 이름과 생김새보다는 느낌과 감정으로 사람을 인식하던 시기, 가현동에서 태장동으로  경계선을 벗어날 때의 설렘이 지금도 남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즐거움, 이제껏 경험해보지 않은 오늘만을 생각하던 신선함. 다마스 봉고차에 물건을 실던 아홉시 너머 바빠지는 직원들 사이를 뚫고 하염없이 걷던 기억.

집 안에만 있으면 심심했다. 놀랍게도 20년 전 텔레비전 방송은 점심에야 끝이 났고 컬러바와 오후 방송 예정 문구만 “삐-” 효과음과 함께 정파됐다. 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마당에는 거미와 물웅덩이 뿐이었다. 돌멩이 위에다 풀잎을 겹쳐두고 또 다른 돌멩이로 빻으며 풍기는 냄새를 혼자만 맡을 수 없었다. 혼자서 밖을 나서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번 세 번, 여러 번 마주치면 기억되는 얼굴 단 한 사람도 마음에 남지 않았다. 집 안에서만 놀던 탓이다. 방송이 나오려면 다섯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 아침,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구를 만나러 인생 처음 혼자서 바깥을 나서던 날. 내 몸집보다 두꺼운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한 발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거대한 장난감을 타고 사거리 한복판을 지나 차선조차 없는 골목길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같이 놀았을까. 아니었다. 자동차 장난감은 애매했다. 같이 타기도 어렵고, 밀어주기엔 힘이 들고. 숨바꼭질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달리던 아이들에 비하면 느릴 뿐이었다.

그리고 헤매었다. 나 모르게 사라진 얼굴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혼자가 된 감정을 느꼈다. 눈물이 쏟아졌다. 돌아갈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집밖을 나서며 가졌던 설렌 마음을 잃었다. 갈 길을 잃자 장난감 자동차에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깨웠다. 가게로 들어오라기에 아무 의심 없이 몸을 들여놨다. 쉰도 넘은 아저씨가 스테인리스 양푼을 가져와 비비기 시작했다. 한 그릇 퍼주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던 나를 지켜만 보았다. 간간히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치를 보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긴 했지만, 몹시 매웠기 때문이다.

“물 마셔도 돼요?”

“어어, 그럼.”

많이 맵냐고 묻는 아저씨의 말에 물 여러 잔 마실 뿐이었다. 그리고 감자탕 집이라는 기억 속 건물에 나와 다시 장난감 자동차로 향했다. 피곤함에 서서히 잠들었다. 해가 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장난감 자동차 타고 길 잃자
하염없이 우는 아이 데려다
비빔밥 건넨 감자탕 아저씨

 


이후 엄마는 그날을 회상하며 웃었다. 하도 집에 돌아오지 않기에 걱정이 되어 밖에서 아들을 찾았다고 한다. 노을빛이 퍼지는 저녁. 엄마는 장난감 자동차 안에서 자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똑같아 보이는 바둑판 길목에서 길을 잃은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어디로 가는지 감각을 잃거든 지도 앱을 꺼낸다. 어떻게 가야 할지 머리에 그려지면 걷는다. 길 잃을 때면 아들이 아닌데도 저녁 한 상 차려준 감자탕 아저씨가 떠오른다. 고마운 마음이 가슴에 남는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길 잃는다면, 나도 기꺼이 저녁 한 상 차려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