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라느니, 자존감 챙겨야 한다느니 같잖은 소리 허공에 붕 뜬 채로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 말장난들은 현실 앞에 서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사랑한다던 말도 그랬다. 촉이라는 걸 느꼈기에. 애써 외면하려던 결과가 허무감으로 돌변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생각했던 그 애가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온갖 명분 끌어다가 필요할 때만 찾는 걜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외로움 따위 견뎌내기 어려워서 다시금 입술에 담는 내가 미웠다.
따라서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험할만한 그런 것,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것. 딱 그쯤으로만 생각했다. 내 앞에 퍼지는 물결을 감내해가며 흔들리는 파도를 온전히 느껴야 했기에. 너무너무 외로워서 토할 것 같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졌다. 죽고만 싶었던 순간. 견디기 어려워서 더는 감내하기 어려워서. 공허감에 목을 매단 또 다른 나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 또한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독.
외롭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그 단어. 외로운 순간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까 물어보려던 차에 도달한 단계. 하여 견뎌는 냈구나 생각에 발 디딘 이 시간, 멀미가 멈추었다. 조금은 울렁이는 통에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으나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살아는 지는구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록 이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휩싸인다. 오랜 폭력에 노출된 아이를 끌어안으며 ‘괜찮다, 괜찮아’ 말해주는 어른의 위로에도 불안함이 여전한 것처럼. 오랜 시간 체득되고 스며든 외로움을 정녕 익숙하게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토할 것 같은 공허감이 무겁게만 다가오지만. 멀미에 대처하는 나란 녀석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 같다. 흔들리는 무게 중심을 붙잡고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견뎌내는 나만의 지혜가 보인다.
사실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필요하다. 네 입술에서 흐르는 생기를 마시고 싶었다. 마심으로써 살아있는 영혼이 될 수만 있다면 내 자존심 버리고서 달려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에게 붙들린 노예가 되느니 굶어 죽은 영혼이 되어 사라지는 게 더 나았으므로. 빼빼 마른 존재를 생각하며 견뎌내고 또 견뎌낼 힘을 얻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실컷 토해내고 나면 또 살아는 지니까.
몸에 밴 외로움이 슬프다, 불안하다, 절망스럽다는 감정을 지나쳐 괜찮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걸 고독이라 부르는 걸까. 초연해지는 기분. 새로운 그 애를 만나도 익숙하지 않은 멀미에 또 토할 것 같지만, 이제는 괜찮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까.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아니까.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말장난 같은 운명 속에 또다시 스쳐갈 자신이 있으니까.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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