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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떠난 네 등 돌아보지 않은 이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라느니, 자존감 챙겨야 한다느니 같잖은 소리 허공에 붕 뜬 채로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 말장난들은 현실 앞에 서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사랑한다던 말도 그랬다. 촉이라는 걸 느꼈기에. 애써 외면하려던 결과가 허무감으로 돌변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생각했던 그 애가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온갖 명분 끌어다가 필요할 때만 찾는 걜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외로움 따위 견뎌내기 어려워서 다시금 입술에 담는 내가 미웠다.

 

따라서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험할만한 그런 것,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것. 딱 그쯤으로만 생각했다. 내 앞에 퍼지는 물결을 감내해가며 흔들리는 파도를 온전히 느껴야 했기에. 너무너무 외로워서 토할 것 같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졌다. 죽고만 싶었던 순간. 견디기 어려워서 더는 감내하기 어려워서. 공허감에 목을 매단 또 다른 나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 또한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독.

 

외롭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그 단어. 외로운 순간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까 물어보려던 차에 도달한 단계. 하여 견뎌는 냈구나 생각에 발 디딘 이 시간, 멀미가 멈추었다. 조금은 울렁이는 통에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으나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살아는 지는구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록 이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휩싸인다. 오랜 폭력에 노출된 아이를 끌어안으며 괜찮다, 괜찮아말해주는 어른의 위로에도 불안함이 여전한 것처럼. 오랜 시간 체득되고 스며든 외로움을 정녕 익숙하게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토할 것 같은 공허감이 무겁게만 다가오지만. 멀미에 대처하는 나란 녀석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 같다. 흔들리는 무게 중심을 붙잡고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견뎌내는 나만의 지혜가 보인다.

 

사실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필요하다. 네 입술에서 흐르는 생기를 마시고 싶었다. 마심으로써 살아있는 영혼이 될 수만 있다면 내 자존심 버리고서 달려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에게 붙들린 노예가 되느니 굶어 죽은 영혼이 되어 사라지는 게 더 나았으므로. 빼빼 마른 존재를 생각하며 견뎌내고 또 견뎌낼 힘을 얻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실컷 토해내고 나면 또 살아는 지니까.

 

몸에 밴 외로움이 슬프다, 불안하다, 절망스럽다는 감정을 지나쳐 괜찮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걸 고독이라 부르는 걸까. 초연해지는 기분. 새로운 그 애를 만나도 익숙하지 않은 멀미에 또 토할 것 같지만, 이제는 괜찮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까.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아니까.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말장난 같은 운명 속에 또다시 스쳐갈 자신이 있으니까.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