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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주마등] 코로나가 바꾼 우리들 풍경

입력 : 2020. 06. 10 | 수정 : 2020. 12. 26 | B2-3

 

 

2020년 1월 20일.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한국에서 발생하고 130일이 지났다. 신종플루 때도 학교는 다녔고,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다. 을 경험하기 전까진 이번 봄을 넘길 수 있을는지 넘겨짚었고 기어이 한 번에 만국을 소성(笑聲)시키자 서늘함이 엄습했다. 구로구 콜센터와 이태원 클럽, 쿠팡 물류센터에 이르자 비로소 이번 여름 뙤약볕 쬐는 더위 속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짜증이 피부에 와 닿은 것이다.


전 국민이 ‘난생 처음’ 겪는 코로나에 새 파란 봄은 순삭 됐다. 아직도 뇌가 느끼는 느낌은 겨울 저 언저리에 서 있지만, 축 늘어진 몸만이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난생 처음’이란 풍경 앞에 짜증과 불안, 권태와 분노, 일시적 쾌감과 웃음. 모든 감정이 말라가는 강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흐르기를 반복하며 세차게 말라 간다.

 

 

모든 것을 뒤바꾼 너의 이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너로 인해 우리는 한 번도
걸어가지 못한 길을 걷는다



코로나 앞에서 숙주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스크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끝내 다이소에서 파는 흰 천을 입에 둘렀다. 차마 KF94는 발걸음이 빠른 내게 힘겨울 것 같아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방도였다. 늘 토요일 아침이면 내 옆옆 자리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노숙자를 보면서 ‘어쩌면 저 사람보다 내가 더 감염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전파할 건강하고 활동적인 숙주를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존재가 인식 속에 닿기도 전, 시민들은 희고 꺼먼 마스크를 쓰고 돌아 다녔다. 그렇게 코로나란 첫 물결도 여기서 끝나나 싶었다. 테라스 한 구석 달달한 초콜릿, 휘핑크림 섞어가며 마시면서 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3차 감염만 발생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그리고 이틀이 지나 에서 이 발생했다. 모든 계획과 예측은 꺼져가는 휘핑크림처럼 꺼져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자 도서관의 출입문은 굳게 닫혔고, 토요일 아침 점심 300원 커피와 함께한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과도 잠정적 이별을 맞아야 했다. 거치른 종이에 담아 논 어 부장의 쓰디쓴 편지도, 오 기자의 와일드한 사진과 books로 즐거웠던 안식일이 사라졌다. 풍요로운 커피 맛도 미덥던 노숙자 냄새도. 엄마 손 잡고 꺄르르 웃던 아이들 웃음 소리까지 모든 것이 중단되고 말았다. 후각과 시각, 촉각이란 기억이 순삭된 것이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탄식은 이어진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3월 무렵 가슴을 먹먹하게 한 어쩔 수 없는 글귀들은 카카오톡 상단을 메웠다. 내 이름과 함께 “언제쯤 교회 갈 수 있을까요” 묻는 질문이 한 달간 이어졌다 신종플루 때도 교회는 나갔다면서, 코로나 공포가 과장된 것 아니냐는 대학원 동기의 분통을 고분고분 들어주다 설명을 이어갔다. 그건 어쩔 수 없었고, 재생산지수(R0)가 꽤 높아서 한국 교회가 이해해야 한다고.


꿋꿋하게 열일곱, 방역 수칙을 자체적으로 수립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를 꾸렸다던 연세중앙교회 앞에선 지역 주민들의 우려 섞인 팻말 시위가 이어졌다. 오늘은 열렸거니 찾아간 빨간 벽돌 여의도 순복음, 유리문에 붙은 A3 포스터엔 ‘주일예배 공지’만 붙었다. 그 아래 노랗고 시꺼먼 ‘3월 1일과 8일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만 드립니다’ 뿐이다. 그 아래 고개 숙여 절망 중인 할머니는 핑크빛 자켓과 어울리지 않을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문재앙에 뻐팅긴단 명목으로 전광훈을 중심으로 애먼 신도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대검찰청 앞에서 방언기도로 철야하던 이들 풍경은 시민들이 보기엔 기괴했으리라. 그마저 힘없는 교인들은 내게 ‘언제쯤 교회 갈 수 있을까요’를 물었고, 부활절이 다가오는 사순절. 세월호 다음으로 가장 외롭고 고독한 절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일상의 중단은 말 그대로의 중단이 아니다. 살기 위해 해야 했던 행위의 중단, 고통의 시작이다. 그렇게 4월의 문 턱에 서 있는다. 그런데 뭐? 코로나가 이제 시작이라고?

 

 

들녘 꽃밭을 짓밟고 손짓하는
난생 처음 겪는 낯선 풍경
바쁘게 싸우는 채팅들 속에서
앵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직 코로나 생일도 맞이하지 않았다
밖을 나서지 못하는 고립된 시민들이 디지털 세계로 모여든다. 유튜브를 켜고, 블로그를 로그인하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안 쓰던 일기를 끼적이고 재택근무가 없는 날엔 시차를 두어 출근한다. 주말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주기적으로 안전안내문자를 보낸다. 지진이 발생하면 울리던 두려운 경보음, 뜬금없이 울려도 익숙해진 이 몸.


답답해진 시민들은 유채꽃을 찾아 나섰고, 열차에 몸을 실어 정동진행 무궁화 열차에 몸을 기대었다. 사람들은 바깥,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강에는 코로나를 피해 피서한 시민들이 모였다. 하다 못한 지자체는 행사를 중단했고 그래도 몰려드는 시민들을 막을 길이 없어 아름다운 존재들을 짓밟기에 이르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굉음과 함께 사라지는 존재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난생 처음의 현장들. 


전문의는 우리가 코로나를 모른다고 말한다. 이름은 잘 안다. 코로나가 없는 콘텐츠가 없을 지경인데 아직도 코로나를 모른다고 말한다. 전문의도 모르고 우리들도 모르는 코로나, 아직도 너의 생일조차 맞이하지 못했구나.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보이잖은 적으로 대해야 하는구나. 생활 속 거리두기로 돌입한 지도 이제 한 달. 그래도 교회와 일터에서 확진자는 발견된다. 앞으로도 발견될 것이다.


권태로움 속에서 새로운 불안을 걸으며
현실적으로 아프면 쉰다는 원칙을 지키기 어렵다. 일용직에겐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선고와 다르지 않고 알바생도 일하던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아파도 그만 둘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살아남는 지금의 시대에 아프면 쉬어선 안 된다. 아프지 않은 척해야 한다. 거짓말 못하는 코로나에 더욱더 가게 문은 닫아야 할 테고 다채로운 투 잡, 쓰리 잡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난생 처음 겪어 볼 근무 환경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난생 처음이란 경제 위기가 포스트 97을 만든 것처럼, 2010년대 마저 그리워하던 새로운 억압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 지경이다.


희망찬 포부를 안고 새로운 2020년대를 맞이했건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강타한 코로나 파동에 우리는 조금씩 난생 처음 겪는 불안의 길로 접어든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 번도 걸어가 보지 못한. 대통령 때문도, 국민들 때문도, 교회와 직장 때문도 아닌. 모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되어버린 코로나 파동.


모두가 경험하는 난생 처음 코로나 파동에 모두가 권태(倦怠)에 빠진다. 무서운 이 지점 권태로움에 한 방울씩 젖고 나면 폭력이란 쾌쾌한 냄새가 남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격렬하던 24시간 유튜브 뉴스 채팅은 도배와 비난으로 가득한데, 시험 전 방역 중이란 기사에 “소용없다” “보여주기” 댓글이 새벽 1시 넘어 이어졌고 댓글 창을 닫고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ㅋ과 ㅎ이 섞인 코로나를 연이어 발음하자 감기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댓글 창을 열었더니 누군가가 댓글을 남겼다. 불완전한 앵커의 목소리도 그에겐 난생 처음이던 모양이다. “지금 생방송이죠? 새벽 방송도 고생 많으세요. 앵커 분 목소리가 갈라지는데 혹시 힘겨운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항상 바삐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