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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ㄹㅇ루다가] ②기막힌 표절 일기, 그래도 일기는 쓰기 싫어 !

자유의새노래 2020. 12. 1. 22:44

입력 : 2020. 11. 26 | B6

 

 

1년이 지나도 발전없던 일기
10년 지나서야 웃으며 보다
소거된 기억을 꺼내온 기록

논리가 부실해도 응원하던
선생님의 일기 테이프 손질
쓰기 싫어 표절을 일삼기도

 

일기 쓰기가 귀찮던 걸까. 예전에도 발견하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새 학년 맞이해 첫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가 자기표절이란 사실 말이다.


2학년 담임은 엄했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던 나를 혼자 남겨 당신과 나머지 공부하게 했을 만큼 열의를 가진 분이다. 끝까지 더하기 빼기, 세 자리 계산이 가능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런 엄한 분이 일기장 2권 발간에 축하 메시지와 함께 손수 두 권을 테이프로 감아 한 세트로 만들어 주었는데. 세심한 관심이 내겐 두려움보다 정겨운 칭찬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잘 쓴 글엔 ‘상’을 일반 글에는 ‘검’을 붙였다. 그 기준을 지금도 모르겠지만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기억난다. 2학년 겨울방학, 선생님의 검사가 없어도 마술쇼를 보고 ‘나는 아무리 해도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다. 내 손가락은 고무줄 손가락’ ‘결국 다른 차 때문에 졌다. 아! 분하다’ 같은 문장으로 구사한 걸 보면. 발전해 나간 내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착각도 오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마술쇼’를 적은 일기 앞장엔 같은 날짜로 ‘동생이랑 나랑 TV를 봤’으로 끝나는 제목의 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엄마의 철저한 검열이 ‘동생이랑 나랑 TV를 봤’으로 끝나는 제목의 일기를 ‘마술쇼’ 제목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엄마의 철통같은 검사가 없었다면 ‘내 손가락은 고무줄 손가락’ ‘아! 분하다’ 같은 문학적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 거다.

 

 

명백한 표절/오래 전 옛날에도 발견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제목도 똑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3학년 진학하고 첫 날 꽤 잘 썼다며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베껴 쓴 듯하다.

 


세상에 하고픈 숙제가 어디 있을까. 그래선지 3학년 첫 일기를 제출하던 날. 표절한 일기로 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진짜 분했다’ 게임은 달라졌지만 쓸 소재가 없으니 과거에 쓴 일기를 참고해 제출한 것. 하나 더 얹어 작년에 봤던 마술쇼는 마지막으로 더 소환됐다. 그리고 더는 자기표절 일기가 없는 걸 보면 위험한 모험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마지막 꼼수는 4학년 겨울방학에서 두드러진다. 평일 일기는 유일한 독자인 선생님의 답장 받는 재미로 쓴다지만, 방학 일기는 아무도 읽지를 않으며 방학 숙제 검사하듯 넘겨짚을 게 뻔하니 꼼수를 부렸다. 매일 일기 쓰기가 귀찮으니, 12월 30일처럼 하루하루 일기를 쓴 게 아니라 1월 1일~1월 7일로 부풀려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하루치만 쓰고 매일 일기 썼다고 우겨댄 것. 아쉽게도 해당 일기장은 소실되는 바람에 선생님 반응도 기억에 남지 않지만 어처구니없던 그 꼼수만은 기억한다. 나란 놈 참.


초등학교 일기를 끝으로 학부에 진학하기까지 에세이와 일기는 사라졌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기독교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둘로 쪼개진 세계에서 다층적 사고와 다양한 시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던 일과속기록의 등장과 함께 무미건조한 사실의 나열, 이를테면 아침에 지각을 했는지의 여부, 누군가와 함께해서 즐거웠던 기억, 새로운 글을 읽으며 얻었던 지식들이 줄이 되었지만. 누군가와 갈등을 빚으며 경험했던 부끄러운 사건들은 소거되어 건조한 단어들 속에 낀 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일기는 그런 기억들을 발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