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11. 30 | B1
오로지 내 손으로 적은 일기
아, 미리 써두지 않으면 후회한다.
종례 시간 “오늘은 일기 안 써도 된다”는 말씀만 입에서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끝끝내 현장학습을 다녀온 피곤한 날에도 상냥하게 웃으시며 주제까지 정해서 내달라고 말씀하실 때라면…….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 밴드 음악을 듣고서 쓸 때라면 이미 늦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든든히 아침 먹고 학교 갈 테지만 30분도 족히 걸릴 일기 쓰기에 매진하며 라디오까지 듣다보면 새벽을 넘기기 일쑤. 일기 미리 써두는 게 주말이 든든해지는 이유다.
그 일기 녀석 다시 들여다봤다. 15년 전, 삐뚤빼뚤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도 없지만. 소년이던 내가 생각하던 습관, 생각, 사고방식, 필체까지 오늘의 나를 빼닮은 게 철 없음이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면 2면, 3면 써내려갔고, 선생님께 보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 기획 일기까지 준비해 내보낸 걸 보면 때론 일기 쓰기를 즐겨했던 모양이다.
잘 살아온 아이유를 확인하러 일기를 쓰기도 하고, 무의식중에서 잘못한 부분을 기억하는 박보검, 초심을 잡기 위해 감사 일기 쓰는 김우빈, 학부 1학년에서 20년 간 써온 스무 권의 기록을 보며 당시 마음가짐이 떠오른 유준상 씨를 보면 일기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 다채로운 기록물이다.
일기에서 ‘스케줄러’ ‘일과속기록’ ‘감회록’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발전한 일기 녀석의 변천사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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