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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입력 : 2020. 03. 21 | 디지털판

 

사순절 기간을 맞은 한국교회에 어두운 침묵이 드리웠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가톨릭을 비롯한 개신교회도 예배당 대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에서 곳곳의 교회들은 침묵 속 온라인 예배와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무려 236년 만에 한국의 미사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2020. 2. 25). 전쟁 중에도 미사를 집전한 가톨릭 교계는 결코 가벼운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개신교회도 주안장로교회를 시작으로 명성, 소망, 사랑의, 여의도 순복음교회까지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며 국가적 위기에 동참했다. 코로나19는 초기 증상부터 감염력이 매우 높다. 무증상자에게서 감염될 위험은 매우 낮지만 가벼운 증상에서 일반 감기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열 체크만으로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일부 교회에선 여전히 주일성수(主日聖守)를 목적으로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 지역 주민들을 걱정하게 한다.

 

마치 주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는 성서에서 가르치는 안식일 정신과 거리가 멀다. 성서는 안식일을 오늘의 일요일로 확정하지 않았다. 탈출기(20,8)는 야훼의 창조 이후 인간에게 쉼을 선포한 가르침이다. 신명기(5,12)의 안식일은 공동체 해방을 기원하며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쉴 권리를 선언한다. 쉼은 곧 행위의 중단, 공동체의 해방인 것이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은 당연히 지켜오던 제의를 ‘역겹다’(이사1,13)고 표현했다.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주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다’(호세5,6)고 호통 쳤다. 안식일 정신을 잃은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예고했다.

 

예수는 안식일 어느 날 구덩이에 빠진 양으로 비유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냐고 물은 것이다. 바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날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날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마가2,27). 성경에도 없는 주일(히브13,9; 1디모4,3)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한 것인가? 정의를 잃은(호세7,1-2) 북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세6,6)


자립이 어려운 교회는 온라인 생중계 예배가 불가능하고 교인들 헌금이 없이는 월세 부담도 힘들 것이다. 이를 감안한 대형교회들이 재정지원에 나섰지만 개신교회는 진지하게 목회자 수급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예배하면 신선한 공기가 내려온다”니. 교회 밖 국민들은 혀를 찬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도 이렇게 말했을까?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겠다.”(호세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