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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시대여행] 졸업장도 필요 없다, “할렐루야”면 충분하다②

자유의새노래 2020. 1. 10. 19:05

입력 : 2020. 01. 07 | 수정 : 2020. 01. 07 | B8-9

 

 

이미 정류장에 나와 기다리던 친구 대풍이와 시규에게 미안했다. 예상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미리 정류장에 마중 나온 이들을 만나자 오른손 들고 화답했다. 이미 입가에 머문 미소를 보자 이들도 반갑고 나도 반가웠다. 1년만이다. 학부 졸업하고 첫 만남이니 그동안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신학교와 맞지 않은 시규에겐 휴학이란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해 휴학만큼은 보류하자고 설득했지만 갇힌 분위기의 신학교 자체를 용인하지 않으려 했다. 끝내 놔버렸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휴학이란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졸업장은 내게도 무의미한 현실을 고려하면 일찍이 내린 휴학은 나쁘지 않았다.


시규와 달리 대풍이는 이제 목회학석사(M. div) 과정을 밟는 믿음의 신실한 친구다. 나보다 더 많은 믿음을 소유한 녀석인데. 얼마나 믿음의 삶을 사는지 뜬금없이 쏟아지는 우박을 바라보며 두 손 모으고 우박이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한 사건도 있었다. 놀랍게도 우박이 그치자 시내산 아래 야훼로부터 율법을 계시 받던 여호수아처럼 보도블록 위로 훈훈한 연기만이 스산하게 지나가는 풍경만을 바라봤다.

 


고깃집 회동
오늘의 여행이 가져다 줄 깜짝 선물은 재회뿐이 아니다. 무려 대풍이가! 점심을 쏘겠다고 한 약속이다! 그만큼 마음이 좁다거나 무언가 주기에 생색내는 녀석은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기 생활도 굶으며 이어가던 녀석이 무슨 형편으로 점심을 쏘겠다는 건지. 내심 기대했다. 신대원에 입학한 1년이란 시간은 결코 가볍진 않다.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 하지만 공부해야 할 과목이 많기 때문이다. 학기와 생활비를 동시에 벌면서도 대출로 석사 과정을 밟던 이들만 한 둘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시규와 내게 대접하겠다던 대풍이에게 새삼 고마웠다. 학부시절 어머니께 받은 건강 음료도 서슴없이 주던 고마운 대풍이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고기와 삼겹살 앞에 군침을 흘렸다. 말 안 해도 아는, 대학원 생활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잘 할 거야”라고 응원해 마지않았다. 고작 2년 전만해도 내 성적 이기면 서지수 그만 좋아하겠다(?)고 내기까지 했건만,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던 그가 대학원에선 원만한 성적으로 이어간단 얘길 들었다. 김광수가 끼적인 본문을 성심성의껏 요약할 때부터 ‘잘하겠지?’ 물었던 생각을 단숨에 접을 수 있었던 이유다.

 

도착하자 만찬을 함께했다

 


바삐 굽던 시규와 고기 맛을 품평하며 “대풍이가 사준 덕분인지 이곳이 가장 적당한 식당”이라 예찬했다.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 중인 시규에게 미얀마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아직 대풍이가 모르던 정보였고 지난 7월에 처음 소개한 미얀마 선교사에 대해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교회는 싫어하지만 신뢰 관계를 쌓아갈 선교사를 찾은 모양이다. 그거 참 다행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갈 방편을 찾는 존재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던 나도, 오늘의 만찬을 기억하며 훗날 안정된 삶을 꾸릴 무렵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 점심은 대풍이가 쏜다
가장 적당한 식당에서의 회동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한 약속

세기의 대결: 내기를 건 승부
나는 골포스트, 대풍은 스페어
내기를 건 승부 끝에 大 패배




볼링 한 판
불확실한 미래라는 정체불명 앞에서 너스레 떨면 그 공포가 웃음처럼 잠시간 잊히곤 한다.


“크─ 이 모든 게 뭐,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인 것 같아! 이렇게 날씨도 좋고 덥지도 않고. 이건 마치 뭐, 주님께서 시편 150편에 살아있는 모든 만물을 향해 찬양하라고 하지 않았냐!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랄랄랄 따따따”


백주대낮 길거리에서 찬송가 부르며 전자상가 앞 마이크 든 직원분의 목소리가 큰지, 내 목소리가 더 큰지 겨뤄볼 뻔 했다. “계속 들어보면 뭔가 놀리는 거 같아 이상하다”던 대풍이가 만류한 덕분이다. 수업 끝나고 걸그룹 노래 부르며 방언까지 터진 덕분에, 나를 미친놈 취급하던 동급생이 많았다. 이와 중에 러블리즈 믿는다고 설쳐댔으니.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버블티를 들고 볼링장으로 향했다.


내가 먼저 정열을 상징하는 붉은 넥타이를 셔츠 사이에 넣고 볼을 던졌다. 세계 챔피언은 살짝 비껴간 듯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다 고개를 두 번 가로 저었다. 레인(lane)으로 향하던 볼이 스트라이크를 간신히 비껴가 도랑에 빠졌고 거터 볼(gutter ball)을 맞았다. 허리가 편하지 않던 대풍이도 겨우 거터 볼을 피하자 둘만의 대결이 시작됐다. 세기의 대결! 어차피 못하지만 누가 더 못하는지 대결을 펼친 것이다. 내기도 걸었다. 이긴 사람이 세 게임 다 계산하기로.


오픈 프레임(open frame) 상황에서 대풍이가 보란 듯이 스페어(spare)를 선보이자 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항시 골포스트(goal post) 유독 7번이나 10번만 남겨 놓은 나와는 달랐다. 게다가 버거운 볼링공 제대로 안 닦은 핑계를 대다 패배의 승리를 맞이하고 말았다. 포즈만 챔피언이었던가.

 

음료를 마신 후 향한 볼링장에서 세 게임을 뛰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도 볼링을 좋아했다고 한다. 곤봉을 악마로 간주해 잘 넘어뜨리는 자가 신앙심이 두텁고 믿음 좋은 사람이라던 시대에서 게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쉽게도 대풍이보다 마귀, 사탄, 귀신을 많이 넘어뜨리지 못했다. 신앙심과 종교개혁에도 관심이 없는 이유일까? 허허.


믿음을 가지고 어둠 속 심령대부흥성회에 은혜 받으러 코인노래방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