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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자유의새노래 편집방향

입력 : 2019. 12. 31 | A1-2

 


131명이 작성한 게시글을 확인하고 쉽사리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한글날을 앞둔 2013년 10월 9일, 필명 대한제국(大韓帝國) 안티 카페 ‘녹림청월(綠林靑月)’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돌 팬덤에서나 보일 법한 댓글 여론조작은 설(說)이 아니었고, 실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충격이었습니다.

“비극선언의 날, 반종세력(反從勢力)의 정치 시나리오 중 하나다”

자유의새노래는 창간호가 없습니다. 그 흔한 창간의 포부와 심경, 어떠한 신문이 되길 바란다는 힘찬 응원도 담지 않은 채 덤덤히 여론조작의 상흔을 지면에 실었습니다. 본지 1면에서 ‘녹림청월에 의한 필명 대한제국 악성 댓글 사건’을 실었듯. 창간호의 포부보다 발생한 사건에 충실한 신문이길 바랬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프로파간다에 충실하겠다는 무언의 의지이기도 했습니다.

◇정론직필의 자유
여론조작이란 집단성을 느낀 순간은 녹림청월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이어가던 시절에도 감지했습니다. 지금도 개신교회 한편에선 동성애와 역사비평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으며 성서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일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10년을 몸 담아온 교회가 그러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란 두 기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위 중독과 교회 생활이란 틀을 유지한 채 생명력을 연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정의롭지 않다고 외칠 용기는 저항할 자유에서 비롯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비판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아라(마태 7,1)’하신 예수의 말을 곡해하고, 바르지 않은 말을 서슴지 않아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같은 복음서에서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마태 5,37)”라고 말합니다.

진정성을 논하고 특정 행위가 진짜 신앙이라 말하는 이들을 향해 본지는 “아니오”라고 말할 자유가 존재함을 믿습니다.

◇시대성의 창달
자아는 타자와 연결 되어 있고 세계 속에 공존합니다. 문화섹션 Now와 러블리즈 덕질일기를 통해 공개 지면을 선보인 이유도 한 사람이 세계 속에 타자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성찰도 마찬가지입니다. 녹림청월과 개신교회의 여론조작 상흔에만 몰두한다면 집단성을 죄악시하는 결과를 낳고 단독자는 끝내 닫힌 인식 속에서 같은 말만 되풀이 할 것입니다.

시대성의 창달은 변해가는 사회의 흐름을 인지함과 동시에 단독자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기록 활동의 정신임을 믿습니다. 소통을 말하지만 소통이 불가하고, 대중을 향하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 속에 지켜야 할 가치는 이념이나 외부의 활동으로 대체되지 않는. 오로지 성찰하려는 인간됨의 정신, 끊임없는 사유함의 고고(顧考)한 정신. 다시 말해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고 반성하며 그 가치를 소중히 하는 과정에서 발생함을 믿습니다.

 

 

정론직필의 자유, 시대성의 창달
주체자의 기록, 신 죽음 以後 시대
本紙는 끊임없이 기록하겠습니다



◇주체자의 기록
이러한 기록은 주체자의 몫입니다. 자신의 삶은 오로지 자신만이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성과 성찰, 기록과 기억도 주체자의 몫인 이유입니다. 주체성을 잃은 집단은 개인을 소외시키고 맙니다. 여론조작과 맹목적 신앙은 자아 정체성과 주체성을 잃은 개인의 무기력한 삶을 만듭니다.

기록하기 위해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하기에 기록한다고 믿습니다. 주체자의 기록은 존재론을 고민하는 작업입니다. 개인이 파편화되는 현대 사회에도 스스로의 힘을 지닌 이들이 모여 기록을 남길 때 주체자의 힘이 발생할 것입니다. 주체자의 힘은 맹목적 신앙과 여론에 몸을 기댄 무기력함에 생의 의지를 더할 것입니다. 본지는 ‘주체자가 기록한다’는 행위에 더해 ‘생(生)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더하고 싶습니다.

자아를 강조하지 않아도 자아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주체자의 힘, 주체자의 기록을 이어가는 삶이라 믿습니다. 행동방식과 삶의 패턴을 지켜야 한다는 공포나 강박과는 다릅니다. 내가 존재하듯, 네가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공동의 세계 속에 나와 너의 존재 의미를 물으며 생을 이어가는 힘이 주체자의 기록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
그리고 2020년, 본지는 오늘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희생자 의식이자 피해서사인 ‘신 죽음의 시대’ 종식을 고하고, 신 죽음의 시대 이후의 담론을 제시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성서라고 믿습니다. 성서 신학을 쉽게 포장해 독자 여러분께 선사하겠습니다. 교회 안 이야기를 다시 기록함으로써 그간 배제되어 온 관계 중심의 증언을 이어가겠습니다. 신 존재를 묻겠습니다. 확정되지 않을 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겠습니다.

묵은 2010년대를 마치고, 새로운 2020년대를 맞이하는 오늘의 감회(感懷)는 경이롭습니다. 이제껏 달려온 것처럼, 본지는 기록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