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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어디로가나

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5> 무너진 공간. 서서히 빗장을 연다는 건 입력 : 2018. 09. 16 | 수정 : 2018. 09. 17 | A26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스스로도 참담함을 느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네가 왜 거기 있느냐!” “목사님…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고, 가자고…” 영적 전쟁에서 졌다는 듯, 참패한 얼굴로 고개 숙이며 통화를 마쳤다. 1시간 소요된 것으로 기억한다. 비를 맞는 자신을 그려 보라기에 거대한 동그라미에 빛이 퍼져가듯 줄을 그어 놓고 “하늘에서 바라 본 거예요.” 퉁명스레 대답한 병원에서 낯익은 이질감을 느꼈다. 이질감은 교회에서 자주 느끼곤 했다. 네 차례 교회를 나온 걸로 기억한다. 쓰나미 같던 방송 일에 좌절을, 말 안 듣고 개기는 주일학교 보조교사에 분노를, 삭히고 삭혀 감정 처리 방법을 몰라 .. 2018. 9. 17. 12:22 더보기
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4> 인간성의 상실, 그 언저리에서 입력 : 2018. 09. 09 | 수정 : 2018. 09. 10 | A30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하교 중이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평소처럼 놀려대는 말이었는데, 그 평소가 지윤이에겐 평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자 째려봤고, 움찔!해진 나머지 저미어든 아픔을 그제야 깨달았다. 미안하단 말도 하지 못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더는 다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지윤이를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적 무언가를 느꼈고, 뒤늦게 알아차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밤 10시까지 채워야 했던 첫 야간자율학습은 곤욕이었다. 평소처럼 점심엔.. 2018. 9. 10. 00:39 더보기
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3> 한 여름의 침묵 입력 : 2018. 09. 05 | A26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교회를 나오고 1년 9개월 4일만이었다. 도서관에서 알바하느라 여념 없던 작년 여름, 뜬금없이 교회 사모에게 연락이 왔다. 고민도 않은 채 곧장 받았다. 받으리라 상상 못했다는 듯, 한 마디 던졌다. “어? 전화는 받네?”* 한 시간 가량 통화한 걸로 기억한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이유로 교회를 나왔는지. 앞으로 무얼 하며 지낼 건지. 어느새 교회에 나라는 존재가 금기시 되고, 집단 기억에서 소거되었음을 느꼈다. 살아있는 존재를 두고 죽은 존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라. 흥분과 설렘을 안고 신학교에 입학해 매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기도했다. 아무도 없던, 척박한 곳에서 헤쳐나갈 가냘픈 자아를 .. 2018. 9. 5. 15:33 더보기
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2> 기억이 소거된 그 곳, 방송실 입력 : 2018. 08. 31 | A20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너, 방송일 해보는 게 어때?” 교회 창립 행사가 끝날 즈음, 그 때였다. 방송 시스템을 구축한 집사님이 내게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디자이너도 울고 갈 최초의 방송 시스템은 휘황찬란했기 때문이다(너무 촌스러워 마음에 안 들었다). 교회에 방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시스템 이래 봐야 하드디스크 39GB, 메모리 4GB, 4:3 모니터, 두꺼운 본체에 빔 프로젝트 연결해 둔 체계에 불과하다. 그땐 화면 비율 16:9 존재조차 몰랐다. 하나 둘, 배웠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어렵지 않았다. 화살표 누르며 가사를 바꿔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문제가 발생했다. 담목이 복음성가를 띄우라는데 복음성가는 없었다.. 2018. 8. 31. 12:32 더보기
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1> 베레모도 벗은 채, 교회를 나오다 입력 : 2018. 08. 27 | 수정 : 2018. 08. 28 | A21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13년. 자그마치 13년이란 시간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2003년 부활절부터 여태껏 달려왔으니 아쉬울 법도 하다. 베레모도 쓰지 않고 방송실을 나왔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데에는 후련함이 맴돌았다. 그렇다. 가나안 신자가 되었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 건가. 무엇을 하며 지낼까. 만감이 교차했다. 교회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더는 담임목사(담목) 신앙에 공감을 표하기 어려웠다. 어쩌겠나. 신학생은 담목 입에서 선포되는 말이 하느님 말씀이어야 하는 걸. 삶이 되어버린 나만의 신앙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꾸역꾸역 버텨온 결과였다. 유감스럽게도 내 신앙이 사람을 살릴 수 있.. 2018. 8. 28. 13:38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