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라 시론] 썩은 동아줄

지애보다 준희가 아닌 건 지애라서 지애가 좋은 법 기독교적 우월감 버려야 부끄러운 얼굴들 보일 것 이걸 자기객관화라 한다
2020년 11월 22일

자기객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발언과 행동은 무엇이든 부끄럽다.

술에 취한 채 기숙사로 걸어와 질질 끈 몸을 침대에 뉜 채 세상만사 자기편이 아니라고 떠들던 분위기를 아는가. 죽음과 고난을 거느리며 출신성분으론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비운의 주인공은 실력은 출중하나 치고 올라갈 한 방이 없다며 한숨을 이어간다. 토닥이며 날이 지났으니 방으로 돌아가시오 위로에도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늠하며 교수들을 만나고 왔느냐고 물으면 물어봐주길 바랬다는 듯 실토하는 한 문장들에선 최소 두 명의 교수 이름이 연달아 나온다. 때마침 TV조선 뉴스9에서 흐르는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줄다리기가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얽혀서 풀리질 않는 알력 다툼으로 이뤄진다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래도 이 방의 후배들은 술 냄새에 찡그리기만 할 뿐 자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할 일만 한다.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에 모든 것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그대는 점잖이 들어봐 달라는 속삭이는 목소리에 뉴스 앵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교수들 눈치 보는 대학원생을 떠올릴 테지만 고작 학부 때의 일이다. 한국교회처럼 좁은 집안에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지만 이 양반 말씀을 듣다보면 마치 자유의새노래에 찾아와 물컵을 깨뜨리며 술주정하자 오늘의 1면을 갈아엎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당시 1면엔 방언 논쟁에서 이겨 신 죽음의 시대를 보도한 기사가 배치돼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 양반은 실력이 출중하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해낸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인간을 대하는 자세였다. 한국교회라는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망가뜨렸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교인들을 기다려 줄 여유는 없었고, 자신이 이해 받아야 타인도 이해할 수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교회라는 조직에서 모난 행동으로 주위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자기 실력을 안고서 교회를 나온다면 잘 먹고 잘 살 텐데, 교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운명처럼 스스로가 멍에처럼 지웠다.

자아도취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류의 망상은 정치질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 속에서 여러 교수들을 만난 내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봐달라는 어리광을 만들었다.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엔 나약한 인간이란 고백들은 점심이 되어 취기(醉氣)가 빠져야만 내 이름 부르며 인사하는 짧은 여운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해했다. 한국교회는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김주하 앵커와 똑같이 생긴 AI 김주하 앵커를 보며 벌써부터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상상부터 인간을 정복해 착취하는 단계까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며 만들어 낸 구조를 AI도 똑같이 하리란 상상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반응을 보며 먼저 떠오른 건 한국교회였다. 청소년 사역 한다던 전도사에게도 직설했다. 여자 아이돌을 좋아하며 삶이 바뀌어간 간증들을 나열하며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어쩔 거냐고 물은 것이다. 기독교적 인간론은 구식이고 더는 새로운 시대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진리는 변하지 않으며 신앙을 대체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 같은 우월성 프레임은 내가 만든 덫이다. 철학과 결을 달리하는 종교에서 우월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공 지능에 인간만의 감정을 넣는다 한들, 인간의 가치가 추락하지 않는 것처럼 실패하고 넘어지고, 실수하는 인간의 매력은 인간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도 잘 부르고 작사·작곡도 직접 하는 주니엘이 지애누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서 지애누나 매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월의 성(城)을 쌓고 되도 않는 논리로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을 변호하려다보니 전술에서 몸통부터 해체된다. 신 죽음의 시대를 건너온 새 시대의 현대인에게 불과 구름 기둥으로 홍해를 건너게 해 줄 신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좌파 싫어하면서도 자본주의 해체 논리 따와서 신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들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도 만들어내는 인간의 독창적인 상상력 덕분에 교회의 교리는 여자 아이돌 앞에서마저 와르르 무너진다. 그런데도 천국과 지옥을 운운하며 허접한 종말론 따위로 공포 마케팅 한다고 교회로 달려갈 것 같은가?

한국교회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우월감을 버려라. 하나님이 더는 동아줄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지가 보일 것이다. 다른 세계를 접하며 자기객관화가 이뤄진다면 교회 시장 이용해 먹으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삶 살겠다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할 낯짝도 사라질 것이다.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목회자 자녀들 심정은 하나다. 교회를 물려받거나 교회 시장 속에서 살아남는 것. 교회를 등진 청년들을 향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지껄이겠지만 그들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앞에서는 명함 하나 내밀지도 못할 것이다. 지애누나 좋아하는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린다면 평생 그러고 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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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시론] 소녀의 이름으로

나는 이제껏 김용철의 새능력을 왜 더 빨리 탈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더 빨리 탈교(脫敎)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관계를 정리했더라면…. 소년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은 우연히 입수한 18년 전, 한 영상을 보면서 오롯이 해소되었다. 연세중앙교회 YBS 인터뷰에 담긴 소년은 짐짓 말할 수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인데 왜 그걸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중학교 2학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죈단 말인가. 새능력을 탈퇴하고서 나는 단 한 번도 김용철의 설교를 끝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양심에 찔려서도 아니고 눈물이 감격으로 앞을 가렸기 때문도 아니다. 1시간 설교 모든 문장 옭아맨 감정 동원과 협박 구조, 의미 없는 아멘의 반복, 철학도 신학도 없는 감정만 휘젓는 수준의 처참한 호통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의지한 채 청중을 감정적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각 단락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도취에 빠진 간증을 서사로 가져다가 어떻게든 이어 붙이는 게 전부다. 모든 것 공허함의 파도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죽을 용기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절 스물 두 살의 나는 미지(未知)의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지옥에 가는 건가 싶었다. 가족도, 연고도 없이 새능력에 붙잡혀 노동 착취를 당했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탈출이 재생되었다. 때로는 방송실 귀퉁이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꿈으로 재생되었고, 어쩔 땐 빠져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많으면 한 달, 뜸하면 서너 달에 한 번 연속된 꿈은 새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로부터 찾아오는 ‘시간의 죄책감’이 나를 오랜 시간 사로잡은 것이다. 몸은 난파선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나의 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시간. 탈교는 무너진 영혼 속에서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주입한 죄책감은 남은 인생의 각도를 비틀었다. 어그러진 관념과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긴 시간의 교정이 아니었으면 영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 소년이 자신의 입으로 토설한 ‘알고 지은 죄’는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상징이다. 왜곡된 여성 이해의 뿌리는 기독 담론 그 자체다. ‘성숙한 소녀’라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빚어 만든 망상이 소녀의 노동을 착취했고, 소년의 미래를 짓밟은 것이다. 탈교 이후 나는 차근차근 기독 담론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소녀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야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잠한 것처럼 나는 소녀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되어가는 과정을 순연(純然)하게 바라보듯 과거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고 재건하는 소녀의 손길을 말없이 볼 뿐이었다. 소녀는 잃었던 재주, 놓쳤던 이름, 잊혔던 얼굴을 되찾았다. 에덴의 난민, 아담과 이브는 재건의 기회조차 잃었으나 소녀는 신의 질서를 거스르고 마침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자리에 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일하는 광경 속에서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기억의 화해’가 시대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나는 더 이상 기독교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또 다른 층위를 발견했다. 신의 표정으로도 완곡하게나마

[에셀라 시론] 가난 선생님, 이제 울지 마세요

잔나비의 정규 4집 Sound of Music pt.1 수록곡 ‘무지개’에는 비장한 제목이 붙어 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2’. 그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서글픈 직감에 사로잡혔다. 바닥에 쓰러진 채 날지 못하는, 새의 형상을 한 인간. 그리고 멀찍이서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들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망원경인지 요지경인지 알 수 없는 쌍안경을 들고, 그들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날 수 없는 이의 날갯짓은 외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다수의 사람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 몸짓은 이룰 수 없는 ‘시궁창에서 별 바라보기’ 같았다. ‘무지개’는 앞선 곡 ‘모든 소년 소녀들 1 : 버드맨’의 연작처럼 들린다. 두 개의 뮤비가 말없이 이어지며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끔한 교복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는 소녀와 소년들. 미래를 약속받은 듯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아가는 희망에 찬 장면들. 그러나 제목이 가리키듯, 버드맨은 아기새를 의미한다. 갓날개를 펴고 꿈을 향해 발버둥치는 존재. 그리고 그 꿈은 결국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저 너머의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운명으로 귀결된다. 이룰 수 없는 꿈, 닿을 수 없는 이상. 버드맨은 그렇게 다수가 되는 법을 배운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올해가 가기 전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이 직감을 기록할 수 있다면 언제가 되었든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더욱 글로 남기고 싶은 강렬한 불꽃이 타오른 것은 가난 선생님과 헤어질 무렵이었다. 가난 선생님과 가까워진 건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완전히 완수하고 떠난 후였다. 회사에서 영상을 촬영하면 편집한 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게 가난 선생님과 나의 주 업무였다. 때로는 내가 보조로 촬영을 도와드리기도 했고 내가 가난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얼굴을 마주한 지 3일 만에 통성명을 했다. 가끔은 한국어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선지 내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가난 선생님은 유능한 통역 업무로 나를 놀라게 했다. 본사 직원이 아닌 대행사 직원임에도 내게도 따뜻하게 대해준 노동자였다. 가난 선생님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일처럼 회사를 대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화사했고, 당찬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견디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일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인지 알고 싶었다. 그 노력을 임원들이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원체 세상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선한 마음의 가난 선생님은 두 번이나 내 앞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놈 회사는 당신에게 속상한 대우로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날은 축 늘어져 의자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가난 선생님 옆에서 앉아만 있어야 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생했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난 선생님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하는 일뿐이었다. 송구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정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퇴사 기사에는 이곳 회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사무실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내가 속상했던 순간들, 화가 났던 기억들. 그것들을 남겨 놓기로 마음 먹었었다. 말 없이 문장을 쌓고, 쌓다 보니 이상하게도 사건은 사라졌고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난 선생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 묵묵히 버텨준 다른 통역사 선생님들의 얼굴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일’을 기록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함께 견뎌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가난 선생님을 통해 변해가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묵묵히 일하는 자의 항상성(恒常性). 웃음이 났다. 그 항상성은 가벼운 토대가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건 사랑, 정의 같은 추상적 가치나 개념 따위만이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이 비참한 사회를 흐름잡고 있는 건 돈의 가치, 힘의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굵은 권능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 때 삶의 토대를 이루는 이름 없는 것들이 항상성을 만들 수 있겠구나를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원고를 마감하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성과 과거의 전통, 사랑에 스며든 고귀한 희생 정신을 잃은 채 그저 삶에 치여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채 돈에 절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뮤직비디오에서 느낀 서글픈 직감은 내게 청춘을 가리켰다. 사회의 모순을 견뎌야만 하는, 끝내 꿈을 간직한 채 살아내야 하는 방황의

[에셀라 시론] 파수꾼의 마지막 등불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가영이 누나는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날 만난 게 정말 반가워서 웃는 미소는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꿋꿋하게 서 있는 당찬 누나의 모습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달라진 외형 하나 있다면 양손 꽉 쥔 두 아이. 이제는 아이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나이다. 누나를 다시 만난 이유는 단순했다. 누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 학창 시절 누나에게 빚진 마음은 둘째였다. 누나는 나와 10년 전 새능력교회를 함께 다닌 교우였다. 어렸을 시절 나의 민낯을 그대로 본 사람인 것이다. 기록가로서 눈망울이 빛나는 이유였다. 누나를 위해 나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다. 점심을 대접하는 일과 키즈카페 비용을 내준 일,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누나는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나의 학창 시절을 서슴없이 나열했다. “그때는 서운했더라” “그때는 미웠더라” “그때는 마음 아팠더라” 늘 누나에게 상처 준 일은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0년 지나서도 사과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련하고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맙기만 한 누나의 기억 속에 나는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고등학생’이었나 보다. 그러다 달라지지 않은 누나의 성정(性情)을 발견했다. 잡초 같은 누나의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한 것이다.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교회를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부모님이 교회를 그만 다니라고 하셨어.” 내가 알던 퍼즐의 조각과 다른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누나의 입에서 “목사의 신념이 나와 안 맞아서” “교회 일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교회의 착취 시스템, 기독교 교리의 한계 정도는 말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누나의 신앙은 “죽지 않고 살아서”(시편118,17) 강인하고 질긴 그 무언가였다. 누나는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풀어 헤쳤다. 나는 그 비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누나의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비밀이 되어 버린 건축가의 버린 돌”이었다. 오히려 힘겨운 비밀이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어 오랜 시간 어깨 위에 지워져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어려움 따위는 힘든 일도 아닌 것이었다. 욱여쌓임 당해도, 믿음젊음을 착취해도, 교회뼈아픈 과거에도, 신앙꿋꿋한 누나의 신앙과달라지지 않은 미소에‘강인하고 즐긴 생명력’악다구니에 피 토하며 너희 교회에 말하노니“파수꾼의 등불 지키라” 나는 지금도 그날 밤 누나의 한숨, 피로, 적막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무급으로 교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은 일요예배를 위해 아예 교회에서 잠을 잤다. 나는 늘 주보를 밤 10시에 발행했다. 방송실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서 가영이 누나를 마주쳤다. 피곤에 절여 있는, 누가봐도 힘겨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누나를 보았다. 괜챦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손에는 목사가 준 일감으로 보이는 용지로 가득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와 취업, 교회생활을 병행해야 했으니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교회생활 반대까지 겹칠 때라면 누나는 나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한 마디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가영이 쟤가 말야, 돈을 좇고 돈 따라가서 문제야.” 목사 따위가 자격증 시험보러 일요예배 빠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심정을 알기는 아나. 누나는 교회에 충성했다. 문자 그대로다. 온몸으로 교회에 헌신했다. 누나의 삶을 갈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목사는 떼를 쓰기 바빴다. 나를 비롯해 청년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 사역하는 거 그냥 다 애들 장난 같아 보여. 내가 일하던 때랑 비교하면 노는 것 같다고.” 그러나 목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젊은이의 한 번뿐인 청춘을 그대로 갈아 넣었다. 최저시급조차 챙기지 않으며 말이다. 젊은이의 숭고한 정신과 고결한 노동력을 귀한 줄 모르니…. 그래서 예수가 이렇게 말했나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7,6) 그런데도 누나의 기억 속 교회는 착취 구조와 목사의 비정상 신념에 찬 공간이 아니었다. 날마다 놀러 가면 쉴 수 있는 곳, 토요일이면 사람으로 북적대고 반겨주는 곳, 젊은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행사 준비하느라 생동감 넘치는 곳, 가정과 학교에 치여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주는 마지막 등불 같은 곳. 세상 모든 사람이 누나처럼 힘듦을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짐의 무게가 다를뿐더러 비교

[에셀라 시론] 유랑하는 너의 삶에게 보내는 찬사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인터콥에서 인턴 간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쿠팡에서 알바 뛴다는 녀석의 안부를 들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저 허영심 언제쯤 끝나려나’ 지켜본 게

[에셀라 시론] 잘 지내, 퍼피레드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본 이용수 대표는 넉살스러운 아저씨였다. 운영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다가 말없이 등장해 자기 할 말 풀어내던 지긋한 나이의 포스. 적절히 가벼운 캡 모자 하나가 어울릴 듯한 익살맞은 제스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20대를 다 바친 게임” 긍정의 에너지를 바라던 절실한 호소를 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퍼피레드M 1차 테스트 때 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표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게임 문 닫기 두 달 전 서버가 닫혀 있더라고요. 서버 운영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렇죠. 그땐 가끔 들어와서 웹사이트 관리하다 메일 확인하고 그랬죠.” 퍼피레드 개발에 앞서 이 대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논리는 자칭 원작자의 지지층에게서 출발했다. 그가 퍼피레드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상조차 공개되지 않은 불명의 사람이었다. 회사를 운영할 만한 자질도 공개된 바 없었다. 지적재산권(IP)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건지,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는 건지, 서버를 운영해 관리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다. 컬러버스 전신 소울핑거가 퍼피레드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퍼피레드 같은 게임’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지난한 과정을 돌연 중단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무렵 원작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이 신문은 당시 어느 쪽도 두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훗날 이 신문이 이 대표를 밀어준 이유는 단순했다. 적어도 퍼피레드가 문 닫기 직전 서버를 운영한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서버 종료 소식을 건넨 운영자였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퍼피레드는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랬으면 불명의 사람 바짓단이라도 붙잡는 걸까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너무도 가혹했다. 앱 분석 회사 모바일인덱스의 ‘실시간 마켓별 순위’를 보면 퍼피레드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는 걸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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