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고심에서도 유죄라면 만민중앙교회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2019년 01월 31일

지난 29일 PD수첩이 방영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1181회)는 종교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보기엔 믿기 힘든 범죄의 연속이었다(2019. 1. 29).

당회장 이재록 목사 중심으로 구성된 만민중앙교회에서 소위 ‘아버지 하나님(God)’이라 이름 짓는 신격화와 그루밍(grooming) 성범죄, 아이돌 판에서나 구경 가능한 굿즈(goods), 무안단물, 죽어가는 폐결핵 환자, 횡령과 도박에 선물(先物)까지, 이곳이 교회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등록교인 13만 5천여 명 교인들이 무려 20년 넘게 지내온 배경엔 교회라는 구조가 있었다.

1982년 5월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이재록 씨가 개척한 만민중앙교회는 신유은사를 내세웠고 신의 뜻을 대언하는 일도 해왔다. 직통계시와 예언이라는 신비주의 성향 때문에 예성과 한기총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됐다(1990, 1999. 4). 단지 신비주의만 문제였으면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을 위시해 이재록과 하나님을 구분한 채 호칭하지 않았고 교인들은 이재록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를 성령으로 믿었다.

PD수첩이 방영한 후 만민중앙교회는 교회 홈페이지에 즉각 반박 영상을 공개했다. 만민중앙교회 공식 입장은 간결하다. ‘일부 성도’들이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성폭행을 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헌신하겠다던 서원을 지키지 못해 교회를 떠났다고 주장한다. 교인들이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 것도 ‘일부 성도’가 자기 믿음을 과신한 경우라고 해명했다. 심지어 MBC 점거 사태 때(1999. 5. 11)도 동영상을 통해 부목사와 사무국장 및 200여명 교인을 ‘일부 성도’로 표현해 이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과격 대응했다고 밝혔다.

13만 명 중에서 8명과 200명이니 교회 입장에서는 ‘일부 성도’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교회가 해명하지 않은 문제는 더 많다. 허리케인 어마가 광고 아닌 워싱턴포스트 보도 기사로 홍보한 것과 굿즈, 손수건에 대한 해명,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믿음의 분량’ 교리와 법원 직원인 만민중앙교회 교인이 피해자 정보를 유출한 사건 등 교회와 이 씨에게 불리한 내용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마저 해명한 성폭력 피해자와 병원 치료 받지 않은 이들을 ‘일부 성도’라고 지칭했으니 교회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교회 측의 무죄 주장과 달리 1심에서 여신도 8명을 4년 간 수십 회 걸쳐 강간·추행해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고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이 씨와 변호인을 ‘믿는다’던 교회 측은 8명의 증언을 모두 반박하지 않고 사례 세 가지를 들어 ‘일부’만 해명했다. 이탈자들을 ‘일부 성도’로 규정한 교회는 이재록의 지시가 아니라면 교회 입장이 아니라는 것인가? 장로교회에도 당회 입장이 공식 입장이다. 만민중앙교회는 당회가 아닌 교회 입장이란 이름으로 밝혔다. 그렇다면 교회 입장에서 교회는 누구인가. 교회 측은 이재록의 무죄를 믿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한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해명도 없이 일부 성도의 일탈로 일관하고 대법원 판결에서조차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그 때도 모호한 교회의 책임을 말할 건가.

만민중앙교회는 바울 서신에서 ‘믿음의 분량(로마 12,3)’을 단계로 해석한다(2016. 5. 22.). ‘낙원’ ‘반석’ ‘영’ ‘준 영’ ‘온 영’으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런 구분이 없으며 오히려 바울 서신에서 ‘믿음의 분량’은 수치로 계량 될 분량이 아니다. 성서신학적으로 복음서에서 예수 기적은 그가 메시아로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였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대 문학을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은 당시 진보적인 내용을 함축했지만 현재 동해복수법을 허용하지 않음에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피해자는 교인들이 이제껏 그 교회를 나가면 구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만민중앙교회는 하나의 구조가 아닌 세계의 전부로 본다. 그런데도 교회가 이 씨와 변호인을 ‘믿는다’면, 교회 구조로부터 피해를 받은 이들은 누구에게 보상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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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열한 번의 여름, 미디어그룹을 만든 겨울의 언어

자유의새노래 미디어그룹의 출범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롯이 한 사람의 기억을 담던 그릇이 이제 많은 이들의 기록을 품는 그릇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열한 번의 여름을 지나쳐야 했다. 그 사이 겨울의 언어로 아로새긴 추위와 고독, 결의가 지금도 선명하다. 이 신문의 방향을 가른 것은 외부의 세력도, 미지(未知)의 존재도 아니었다. ‘바뀌어야 산다’는 절박한 마음이 오늘을 만든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 새능력교회의 비정상적 신앙은 세상을 둘로 가르고 인간성을 거세했다. 그 거세된 인간성 속에서 내면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그 아이를 오래도록 ‘소녀’라고 불렀다. 소녀는 인간을 사랑하고 삶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하나된 자아를 추구하는 존재였다. 동일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상징했다. 그러나 교회의 극단적 교리는 소녀의 존재를 부정했고, 신의 침묵은 소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 이 신문의 역할은 죽은 소녀를 되살리는 일이었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억 보도’뿐이었다. 다채로운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배치함으로써 소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리워하며, 애도(哀悼)하는 일뿐이었다. 겨울의 언어는 죽은 소녀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약했다. 그렇게 죽은 줄만 알았던 소녀를 다시 살려낸 것은, 교회로부터 해방을 맞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죽은 줄 알았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추억이 기억의 재편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되찾자, 숨죽이며 기다리던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비로소 소녀의 역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며 삶을 다시 재편하는 일이었다. 자신과의 화해는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나를 의탁(依託)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부모와의 화해, 지인과의 화해 그리고 악마라고 믿었던 이들과의 화해로 이어졌다. 그렇게 열한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드디어 한 시대, 서사의 끝에 서 있다. 오랜 시간 고대하던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은 곧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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