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의 반역

2024년 12월 24일
12월 7일 여의도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의 한밤 내란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야당의 탄핵 시도와 예산 삭감이 그것이다. 대국민 담화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이란 단어가 나왔다. 대한민국에서의 계엄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카드였다.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군사쿠데타가 그랬다. 이들은 국회와 야권 세력, 대학생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힘써왔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도 한밤에 국민의 안온한 평화를 깨뜨린 적은 없었다.

윤석열이 내란을 위해 최소 동원한 장병 수만 1500명에 달한다. 1980년 전국비상계엄 확대 당시 계엄군은 총 98명이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 것이다. 특수전사령부 산하 707 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등 최정예 부대도 투입됐다. 방첩사령부와 정보사령부 요원들, 경찰들도 가세했다. 경찰은 북파 공작 부대 HID 요원을 운용했다는 정황을 구속영장에 적시하기도 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증언에 따르면 윤 씨가 특전사, 수방사, 경찰에 수차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독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뻔뻔하게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거나 끌어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항변한다. 그날 계엄군이 받은 ‘현장 강조 사항’이라는 문자를 보면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항명죄로 다스린다’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도 경고성 계엄이라 말할 수 있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대통령의 놀라운 인식

한밤 내란 한 축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서 있다. 2020년 4월 15일 총선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참패로 끝나자 극우 유튜버들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주장들이다. 윤석열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국정원의 정보 유출과 전산 시스템 안전성 점검에 불응했다”며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취임하고부터 부정선거론자들과 밀착했다고 한다. 취임식에 음모론을 믿는 유튜버를 대거 초청했고 이들은 대통령실에도 포진했다. 자유의새벽당 대표 강기훈 씨는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지난달까지 일했다. 강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배후에 중국 공산당이 있다거나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유튜브를 통해 주장했다. 안정권씨의 누나가 대통령실 국민소통관실 행정요원으로 일하다 여론의 비판이 일자 사표를 낸 일도 있었다. 윤석열은 작년 7월 차관급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김채환 씨를 임명했다. 김 씨는 유튜브에서 ‘21대 총선 부정선거론’을 설파했고 유튜버 시절 “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긴급명령을 발동해 헌정 질서 파괴 세력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선거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를 기본으로 한다. 전자장비는 단순 보조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투표지분류기를 이용해 선거 조작을 펼친다고 주장한다. 투표지분류기는 도장이 어디에 찍혔는지를 분류해주는 기능만 하고 있다. 선거를 마치면 투표함을 열고 분류가 쉽도록 종류별 일정한 방향으로 투표지를 정리하고 투표지분류기를 통해 후보자와 정당별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정확하지 않게 기표된 투표지들은 미분류함으로 적재하며 분류가 끝난 결과를 개표상황표가 출력한다. 분류된 표들도 다시 투표지심사계수기를 이용해 전량을 육안으로 심사하며 정당, 후보자별로 득표수와 무효투표수를 검열한 후 서명 또는 날인을 한다. 결과적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개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교직원, 일반인, 그리고 개표참관인 모두를 매수해야 한다. 게다가 4·10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고발 사건은 지난 8월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종결된 상태다. 그런데도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한지 불과 2분 만에 계엄군 297명이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쳤다. 선관위 과천 청사, 관악 청사, 선거연수원 등 나눠 진입시켰고 이 과정에서 선관위 당직자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까지 했다. 도대체가 선관위로 달려가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죄송하다” “사죄드린다” 이 정도의 진심도 없나

내란 사태가 벌어진지 3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에게선 사죄, 사과 한마디가 나오질 않고 있다. 윤석열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지난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4대 개혁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 왔다”는 등 남탓과 자화자찬 만이 가득하다. 국민의힘도 다를 게 없다.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한 것이 드러났음에도 한 마디도 안하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 시도가 민생과 한국 경제, 국제적 위상에 자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아는가.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계엄령 당일 국회가 아닌 당사로 모이기 급급했고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투표불성립시켰다. 이제는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도 거부하며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국민의힘은 공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박근혜를 비롯해 윤석열까지 국민을 반역한 이들을 배출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러고도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새로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존재로 믿는 것 같다. 정말이지 부끄럽지 않나. “1년 후면 다 찍어주더라”고 말하는 윤상현도 있는데, 뭔들 못하겠나.

명백한 국헌문란의 정의… 반역의 대가 치뤄야

12·3 내란은 2시간 30여분 만에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에 따라 해제 됐다. 헌법 제89조는 계엄과 그 해제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제12조에는 국무회의 규정이 정한 네 가지의 절차가 있음에도 모두 생략 됐다. 그 중에는 국무회의록을 작성하고 보고하며 송부하는 절차가 포함 돼 있다. 계엄선포 건의 절차, 선포시 이유와 종류, 시행일시, 시행지역 등을 정해 놓은 계엄법도 무시 당했다. 오로지 윤석열의 초법적인 범죄적 판단만이 존재했다. 그러고도 한밤 내란이 “소란 정도”라니. 헛웃음만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심판 관련 서류가 오늘도 송달되지 못했다. 이정도면 대통령실과 대통령 경호처는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대한민국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에 대해 정의한다.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해석의 여지가 없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같은 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이 또한 해석의 여지가 없다. 내란죄는 사형이다.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 윤석열을 체포해야 할 이유다. 형법과 헌법은 분명하게 가리킨다.

그날 밤 국민들은 온몸으로 국회를 지켜야 했다. 우리는 45년 전 계엄을 교과서와 역사를 통해 배웠다.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지금도 살아 있다. 그날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명백한 친위쿠데타를 보았다. 윤석열은 국민에게 반역했다. 반역의 대가를 치뤄야 할 때다. 이제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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