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상에 로그인조차 못한 사흘 카카오 ‘블랙아웃’

2022년 10월 22일

15일 오후 330분 판교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서비스가 마비됐다.(2022.10.15) 카카오가 운영 중인 블로그 서비스 티스토리 역시 접속 불가능했다. 카카오는 유례없는 대형사고라고 말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이 작동을 멈추었다. 카카오는 웹툰 뿐 아니라 은행·운송·결제·지도·로그인·포털·검색 등 한국 사회 전반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지도를 열어도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고, 가게에서 결제하지 못하며 로그인조차 불가능한 일상의 중단을 맞이한 것이다. 서비스는 10시간이 지나서야 일부 복구 됐다.

카카오 서비스 일시 중단 사태는 단순히 지도를 확인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은행 업무가 필요한 사람들은 제 시간에 송금하지 못했고 결제가 필요한 자영업자는 일당을 날리기도 했다. 배달 기사들은 앱에서 목적지를 확인할 수 없었고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로그인조차 어려웠다. 본지 디지털판 역시 사흘간 접속조차 불가해 기사 송고를 비롯한 지면신문 서비스와 디지털판 온라인 서비스가 중단됐다. 단지 이 신문 기사를 보지 않는데서 그치는 일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기사 너머의 국민들이 불편함의 수준이 아니라 경제적 손실을 입었기에 보통의 문제라 할 수 없다.

국민 메신저로 알려진 카카오톡은 이용자만 5000만명이 넘는다. 포털 다음은 1800, 카카오맵은 730, 카카오뱅크는 1900만 이용자를 자랑한다. 그 외에도 카카오페이지, 카카오페이, 업비트, 직방, 마켓컬리 등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방식의 서비스는 모조리 제약을 맞이했다. 개인이나 단체 수준이 아니라 정부 서비스까지 일시 중단 된 것이다. 카카오는 포털 다음을 인수하면서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뱅크 등 서비스를 확장했다. 사실상 전국민이 카카오의 영향권에든 지금에도 재난에 대비한 주요 시설의 이원화가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재난에 기본도 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보통의 기업은 재난을 대비해 여러 지역에 데이터 센터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카오는 판교에 지나치게 많은 서버 시설을 배치했다. 네이버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2013년 강원 춘천시에 대규모 서버 체계를 구축한 네이버는 카카오와 같은 데이터 센터를 운영해도 네이버쇼핑 같은 일부 서비스 접속만 지연되는 문제만 발생했다. 과연 이례적인 일로 치부할 문제인가.

이원화 시스템뿐만이 아니다. 재난이 발생하고 복구에 필요한 시스템 백업이 작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시스템이 마비되어도 백업한 시스템을 가동해 서비스 이용에 무리 없어야 했다. 카카오는 메신저 플랫폼을 바탕으로 각종 서비스를 키운 후 분사해 상장하는 방식으로 임직원에게 보상하면서 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시가총액 120조에 달하며 사업을 문어발로 확장한 결과 오늘의 재난 앞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따라서 국가 기간 시절 못지않은 중요한 보안 시설인 데이터센터를 안전하게 가동할 수 있는 만반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화재뿐만 아니라 천재지변, 개인정보 관리 등 벌어질 수 없는 상황까지도 생각하며 대비해야 한다. 일주일 가까이 티스토리 블로그는 모바일 버전으로만 접속 가능한 상황이다. 카카오는 서비스 일시 중단 원인을 트위터로 사고 발생 50여분이 흘러서야 공지했다. 이런 대처로는 더 큰 문제가 벌어져도 수습하기 어렵다. 이 신문만 아니라 전 국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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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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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단고기는 위작이다” 대통령은 이 한 마디가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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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열한 번의 여름, 미디어그룹을 만든 겨울의 언어

자유의새노래 미디어그룹의 출범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롯이 한 사람의 기억을 담던 그릇이 이제 많은 이들의 기록을 품는 그릇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열한 번의 여름을 지나쳐야 했다. 그 사이 겨울의 언어로 아로새긴 추위와 고독, 결의가 지금도 선명하다. 이 신문의 방향을 가른 것은 외부의 세력도, 미지(未知)의 존재도 아니었다. ‘바뀌어야 산다’는 절박한 마음이 오늘을 만든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 새능력교회의 비정상적 신앙은 세상을 둘로 가르고 인간성을 거세했다. 그 거세된 인간성 속에서 내면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그 아이를 오래도록 ‘소녀’라고 불렀다. 소녀는 인간을 사랑하고 삶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하나된 자아를 추구하는 존재였다. 동일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상징했다. 그러나 교회의 극단적 교리는 소녀의 존재를 부정했고, 신의 침묵은 소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 이 신문의 역할은 죽은 소녀를 되살리는 일이었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억 보도’뿐이었다. 다채로운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배치함으로써 소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리워하며, 애도(哀悼)하는 일뿐이었다. 겨울의 언어는 죽은 소녀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약했다. 그렇게 죽은 줄만 알았던 소녀를 다시 살려낸 것은, 교회로부터 해방을 맞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죽은 줄 알았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추억이 기억의 재편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되찾자, 숨죽이며 기다리던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비로소 소녀의 역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며 삶을 다시 재편하는 일이었다. 자신과의 화해는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나를 의탁(依託)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부모와의 화해, 지인과의 화해 그리고 악마라고 믿었던 이들과의 화해로 이어졌다. 그렇게 열한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드디어 한 시대, 서사의 끝에 서 있다. 오랜 시간 고대하던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은 곧
Today소랑 2026년 8월 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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