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지 않은 9월의 어느날. 기다림에도 리듬➊이 있다면 그건 아직 가벼운 박자였을 것이다. 오르막을 오르듯 조금씩 쌓아 올라가던 기대가 한 순간 좌초되었다. 꿈이 사라졌고, 낭만이 무너졌다. 그녀와 함께 꾸었던 수많은 별, 이대로 머물 수만 있다면 좋았을 한낱 야경에 지나지 않았다.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다. 늦게 찾아오기만을 바랬다.➎ 피할 수 있다면, 이 불안이 지나가기만 한다면. 허나 피할 수 없는 연속된 시간의 배열은 삐끗하다간 ‘쉬었음’을, 쉬었음을 피하면 ‘계약직’을, 그마저도 하루를 견딜 수 있다면 ‘과분한 인생’을 안겨주었다. 그 여름➏➐을 견뎌야만 했다.
살기 위해 헤매야만 했던 이직 시장에서 청춘도 첫사랑➓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살아만 있어야 했기에 그래야만 했기에 성공의 방정식을 외면한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한탄하고 또 한탄할 뿐이었다. 어둠을 삼킨 것만 같았다. 배신감도, 앞으로의 날들도. 목은 눈물로 울컥 잠기고 말았다. 허나 무너지지는 않았다.➌ 끝없는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다투던 시간 배열➋ 속에서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푸른 낭만을 선물하겠다”(한로로, 입춘)고 다짐했으므로.
그럼에도 하늘➒은 여전히 푸르렀다. 비워진 자리에서 오히려 담대해지는 감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 그저 말리부 오렌지➍ 한 잔을 너➑와 마셨을 뿐인데.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동안, 나는 아무 멜로디에 이끌리지 않았다. 오로지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몸의 직관과 감각에 의지했다. 그렇게 다다른 여의도. 배신자를 잠시 잊어버리기로 다짐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거란 교훈과 함께. 어리석었던, 바보 같았던 그 여름의 나조차 사랑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