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논단] ‘영진항 부근’은 안 된다면서 ‘삼척항 인근’은 되나보군?

2019년 07월 13일

그 날도 내일이 휴가란 즐거움에 근무가 근무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곧장 달려간 곳은 상황실이었다. 오후 초소 근무 감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세워진 감시카메라 IVS 앞에 앉았다. 다음 근무자가 오기 전 잠시간 앉았던 20분 동안, 벌어진 상황을 일찍 알았더라면. 근무를 더 늦게 교대했을지 모른다.

위병소와 달리 IVS에 앉으면 노곤해진 몸을 바짝 땡겨 의자와 하나 되곤 했다. 한 시도 졸지 않기 위해 옆에 세워둔 노란 커피 맥스(Max)와 함께라면 더욱 힘이 났다. 지능형영상감지시스템 IVS는 이름과 달리 일반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았고 키보드로 카메라를 실시간 조정 가능하단 점 빼곤 영락없는 화질 구린 감시카메라였다.

그러다 상황병으로부터 질문 하나를 건네받았다. “영진항 부근에 뒤집혀진 선박 있냐?” 빨간 등대까지 관측 가능한 IVS로 샅샅이 뒤졌지만 전복된 배는 찾을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 “전복된 배는 없다.” 등명 부표 쪽 선박 3척을 확인했지만 전복된 배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병은 IVS로 달려왔다. 자기가 직접 관측도 하려 했지만 상황실로 온 연락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지속적으로 관측하다 다음 근무자가 다가왔다. 상황 종료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내 옆 후임은 이미 방탄모를 끼고 자리를 뜰 채비를 마쳤다. 나는 사각지대에 숨었는지 확인키 위해 두 IVS를 동시에 확인하며 뒤집힌 선박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이제 막 상황실로 돌아온 상황병 부사수가 또 다시 물었다. “OOO 병장님, 배가 뒤집힌 선박이 있다는데 이게 무엇인 것입니까?” “OOO 병장으로부터 영진항 부근에 전복된 선박이 있단 얘길 들었지만 찾지 못했어.” 감시 구역 아닌 섹터까지 카메라를 돌렸다. 저 멀리 크레인 바지선과 예인선 두 척을 식별했다. 하지만 뒤집힌 선박은 아니었다.

내 다음 근무자가 도착했다. “지금 전복된 선박이 있어. 자세한 위치는 모르고 영진항 부근이야” 방금 확인한 크레인 바지선을 인수인계하고 점심식사 하러 갔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작전과장이 호출했다. 불려온 나는 연락을 받자 “OO IVS 감시 범위는 1km인데 왜 식별하지 못했냐”는 질책을 받았다. “OO IVS 감시 범위는 야간엔 5:5(해상:육지) 비율이며…….” 당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km까지가 맞고 상세히 자세하게 보고 있었다”는 동어 반복만 이어졌다. 그리고 인수인계한 크레인 바지선이 OO초소 기준 11km라고 상세히 보고했다.

레이더 기지에 연락한 작전과장은 소초 기준으로 길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800m” “왜 거짓말 하느냐. 솔직히 근무 제대로 안 섰지? 한 번 소초 찾아가야겠네” 옆에 선 상황병은 “(뒤집혀진 배가) 2~3km라고 말해라” 거짓 진술을 유도했다. 하지만 보지 않은 걸 봤다고 말할 순 없었다. 논란을 종식한 건 의외로 부소초장 증언 덕분이었다. “그 곳은 OO IVS로 보기엔 사각지대였다”는 증언이 아니었다면 뒤집힌 선박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을지 모른다.

소초 전방, 혹은 초소 전방 몇 미터 몇 밀(mil)에서 부유물 식별. 하다못해 초소 전방 몇 미터, 방파제 내항인지 외항인지 던져주건만 영진항 부근에서 뒤집힌 선박을 찾으라 닦달한 그 때, 사각지대를 감안해 찾아대도 보여야 할 찾아야 할 뒤집힌 선박이 왜 보이지 않았냐는 물음 앞에 사각지대는 무의미했다. 나는 “사각지대였습니다”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만일 운 나쁘게 아무 것도 모르는 후임이 내 자리를 대신했다면. 만일 부소초장이 나를 변호하지 않았더라면. 3년이 지나도 2016년 10월 18일은 아뜩하다.

원효대교에서 장 일병은 목선을 언급하지 않았다. 선택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너무도 젊고 어린 나이였으니까.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사각지대임을 나의 가슴이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입술은 움직이지만 무슨 말로 나를 변호하고 지켜야 할지 모르던 그 날 저녁은 누구도 다가오기 어려운 시커먼 심연이었을지 모른다. 수많은 무책임한 말과 의자를 던진 그를 향해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 지난날의 후회가 스쳐갔을지 모른다.

3년이 지나고 대대장이 병사들 읽어보라 던져준 편지를 복기(復棋)하며 파란색과 검정색 명조체 사이에서 두 단어를 떠올렸다. 품성론과 키니코스(κυνισμό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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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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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논단] 9월에 떠난 두 목회자를 뒤로하고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다시 접한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다. 그날 옥한흠은 설교 단상에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게 유흥가 종사자들을 전도해 왔건만 교회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들추었다. 비참한 편지를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누가15,11-32 본문을 인용해 아버지 재산을 미리 받아 탕진한 둘째 아들을 싸늘히 바라보는 첫째 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호통이 이어졌다. “우리의 모습은 탕자가 돌아왔다고 춤을 추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니에요. 사랑의교회, 천만에요. 우리는 바리새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요. 큰 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 1999.10.03) 옥 목사가 숨 거두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대외적 평가는 상징적으로만 비쳤다. 설교를 들어봐도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었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은 본문으로 설교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흥미로웠다. 조 목사는 오히려 교인들을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로 비유한다. 인류는 둘째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떠나 있으니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도 길 잃어버린 사람이요 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길을 잃고 죽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세상 사람인 것입니다.”(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2008.06.22)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성욕에 망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 손 놔 버린 교만과 역겨움이 원인 롯의 아내처럼 교회를 보다가 발걸음 멈춘다 언제나 조용기 목사의 해석이 익숙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일대일 신앙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결코 사람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설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면 철학과 신학, 교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일은 윤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윤리와 비(非) 윤리, 옳음과 옳지 않음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 아닌가. 나와 너, 세계라는 현실의 3요소를 깨달은 존재가 바로 어른이며 인간이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이로 남기를 바랬던 내가, 언제나 조 목사 설교를 즐겁게 들으며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을 따름이다. 그 세계에는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말에 동의할 또 다른 나만이 존재했다. 11년 동안 이어진 이기적 체제는 현실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11년 체제의 종말이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작업은 고통 그 자체였다. 회피라는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피하는 이들도 보았다. 나조차 회피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문제의 문제로 가로막힌 한국의 상황을 누구보다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은 곧 나의 고통으로 연결되기에 사회라는 광의의 존재가 각자의 분담된 공동의 짐으로 신음한다. 구약성경 선지서를 보면 현실의 3요소가 등장한다. 고통을 당하는 나. 신음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하느님이 심판을 내리려는 세계가 드러난다. 원망스럽게도 신은 평범하게 살던 선지자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달한다. 이방을 섬기는 야훼의 질투를 심판과 진노라는 결과로 내보일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나라면 무어라 답했을까. 요나처럼 스페인으로 도망갔을까, 예레미야처럼 울었을까. 다섯 편 설교를 들으며 고등학생 시절

[현실논단] 최문정, 널 마감하고서

학부 4학년 때 일이다. 뒤늦게 확인한 페이스북 메시지엔 “학보사 문제로 뵐 수 있을까요?” 묻는 선배의 한 마디만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라 지인 선배에게 이미 전달 받고 확인한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보사는 생활관장과 정치적 싸움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신문은 정치적인 매체이자 일상과 동떨어진 종이일 뿐이었다. 정치적인 싸움은 165호에서 출발한다. 침신대학보는 지면신문 뿐 아니라 홈페이지 ‘학보사’ 카테고리 속 PDF를 통해서도 학교 안 소식을 전달한다. 유독 165호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한 학기에 한 두 호 정도는 발행해 왔거늘.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홈페이지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글 파일을 건네 받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완성된 느낌적 느낌이 싸했다.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복학하자 학보사를 둘러싼 소문을 접했다. 사람들은 ‘오탈자 하나 잡아 내지 못하는’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반성경적이면서 진보적인’ 집단으로 함축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려던 내 결정도 접어야 했다. 사람들이 흘려 낸 정보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진학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네가 학보사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서도 어떤 내용으로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든다. 학보도 그런 정치성이 보일지 궁금했다.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탄핵되어야 했다. 기독교 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수의 가르침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과 무관하게 당연했다. 창조설에도 여러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성서 구절로 창조설이 진리라던 문장을 보면 확실히 진보적인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위시해 음모론을 말하던 박성업에 관해서는 비판했다. 대법원 앞 거대하게 탑 쌓아가던 사랑의교회를 지적했다. 공동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 아나벱티스트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상화가 요원한 이 학교 총장 직무대행을 꼭두각시로 보이도록 곰돌이 인형을 만평으로 풍자했다. 총학생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교수들 중 한 사람이 친인척을 학교 이사로 꽂은 상황이라 말을 꺼냈고 방학 기간 틈 타 징계 당할 뻔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학교 문제에 말을 아꼈다. 대자보라도 내야 할 상황에도 침묵했다. 법원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비품을 아껴 쓰라는 말만 돌았다. 공론장 잃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교수들 알력 다툼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볼 질문은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 학보의 인쇄 자금을 끊은 건 학교 당국이었다. 아래아 한글판 165호도 배곯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학보사에서 일할 학우 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 나를 영입하려던 부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건 취재하는 일이고 취재 지시를 받은 다음 일이다. 누군가는 지면 신문을 기획해야 한다. 누군가는 백지 위에 기사를 배치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탈자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픽은 또 누가 만드나. 한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동체 의식은 나라는 존재가 사회라는, 학교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누구도 학교 문제에 나서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을지 모른다. 문제가 어떻게 얽혔는지 풀어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래 정치 싸움 너머 어른들 다툼에 끼어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른들이 공론장을 박살 내는 동안 젊은 것들은 무시 당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려 하다니. 내 아둔한 지각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지 문화섹션 나우에서 선보인 단편소설 ‘너에게 맞설 수 있는 치트키’에서 주인공 최문정은 아무도 없는 밤 기숙사에서 남자애와 키스한다. 문정은 잠 못 이루는 감정을 느꼈다. 키스를 그리는 장면에서 상상했다. 만일 선배의 부탁을 받아 들고 학보사에 들어갔다면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라도 더 빨리 장신대 신학대학원 진학이란 허황된 꿈을 버리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벽을 조금 더 일찍 마주치지 않았을까. 지면신문 배치마저 인쇄소에 맡기던 “에휴, 자유의새노래 만도 못한 학보구나” 탄식 대신. 기획실장, 아니 편집국장과 싸우며 침신대학보라 쓰고 공론장으로 읽는 희망의 탑을 하나씩 쌓아가지 않았을까. 최문정을 이용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고픈 열망이 샘솟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맞았다. 정치인을 아이돌로 추앙하던 20세기와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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