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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now]

[주마등] 한 그루 나무 아래, “아니”라고 외쳐본다

자유의새노래 2018. 12. 21. 17:01

입력 : 2018. 12. 16 | 수정 : 2018. 12. 16 | B2-3

 

자동차가 지나가자 주위가 조용했다.

 

습관처럼 들여다본 하늘은 어두워져 갔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걱정이 스미어 들 때면 찾아온다. 자주는 아니다. 한 달에 두어 번? 많아봐야 세 번. 두 달 만인 것 같다.

 

두 달 동안 걱정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발 디딘 오늘 하루가 무거워서 찾아온 건 아니다. 마음의 결단 때문이다. 미루고 미루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떨렸다. 설령 오늘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해도 쉬고 싶었다.

 

 

 

돌아가는 팬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결단을 결심한 지금에서 거스르면 작대기 하나, 이등병 때로 올라간다. 근무보다 지옥 같던 선임병의 괴롭힘은 나름 군 생활했다는 분들 앞에 아무 것도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아닌 건 아니다. 사심을 품었기 때문인지 그냥 미워선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툭하면 톡하고. 터지듯 갈구던 선임이 밉지 않았다. 좆같았다. 대처를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해서라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처신의 문제.

 

군번줄이 본격적으로 꼬여온 건 새 선임이 등장하면서다. 안 그래도 맞선임과 10개월 차이인데 내 위로 선임이 들어오다니! 새로운 선임은 전출도 억울하다며 막 나가기 시작했다. 군필자는 알 거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만이 남는다는 걸. 문제는 나태함과 회피라는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속도다. 아마 FM근무를 고수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중요하건 열심히 군생활하고 안하고가 아니다. ‘아예 모름’ 바이러스가 후임에게 내려오는 현실 앞에서 말이다.

 

선임분대장은 요구했다. 분대장 견장을 달 사람은 나뿐이라고. 마치 내가 아니면 안 될 상황인 듯 간사한 혀로 꼬드겼다. 수락했고, 후회했다. 이런 나를 보고 찌질함을 느낄지 모른다. 줏대 있게 말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주어진 일에 묵묵히 일만하는 바보였다. 오히려 속마음을 말하면 큰 피해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견장 달고 카리스마 부리면 좋겠지만 성격상 보여줄 카리스마는 없었다. 혼란한 소초에서 보여줄 카리스마는 FM뿐이었다.

 

분대원은 더욱 나를 의존했다. 최선을 다해가는 팬(Fan)이 더욱 발동했다. 물어보면 가르치고, 귀찮다면 먼저 하고, 그 하루를 살아냈다. 마냥 바이러스 틈으로 숨고 싶지 않았다. 나조차 환경 탓하며 회피하고 만 상황에서 마주친 중학생 때의 트라우마. 음악시간 이탈된 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틀릴 때마다 반복되는 비웃음과 부끄러움. 혼자 생각하고 남들 시선을 느끼기 시작한 계기였다.

 

지금까지 이어지다 터지고 만 팬. 번 아웃(Burnout syndrome). 마침내 쓰나미로 다가왔다.

 

다시금 나를 추스르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세계이기에 갑작스런 공허감은 익숙했다. 힘들거나 어려운 건 아니었다. 버텨내지 못했다면 이등병 때 포기해야 했다. 텅 빈 생활관, 내무실이란 빈껍데기 벗고 등장한 2016년 생활관이 낯설었다. 오늘도 방탄모를 착용했고 탄띠를 조였다. 일상은 이어져야 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바래 진 견장을 두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60대 노년을 보았다. 지금까지 잘 버텨오던 삶이 허무해졌다. 쓰나미처럼 쓸려나간 느낌. 더 이상 감정은 작동하지 않았다. 기계 마냥 움직이지 않는 표정. 손 하나 까닥이기 싫은 육체가 지금을 말할 뿐이다. 예고 없는 극단적 생각과 폭언이 늘어갔다. 지킬 앤 하이드. 나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전역. 그 세계를 벗어났다. 존버 승리.

 

물론 전역하고 행복해진 라이프 스타일을 상상한 건 아니다. 고요히 찾아온 해방을 공허감과 함께했으니까.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뒤로 하고 사회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또 다른 산이 보이는 순간이다. 다시 입대 전으로 돌아간 현실을 군필자들이면 알지 모른다, 자퇴나 전과를 생각하며 미래를 고민하다 던진 후배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노력해!”

 

자퇴? 전과? 모르겠다. 학교를 갈아치운다 해도 대안일까. 회피를 위한 도피처란 생각을 했다. 아직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고민하지 못했으니까. 후배가 늘여놓은 군 생활을 듣고 보니 들을 만 했다. 왜 자격증에 목숨을 걸었을 지 누구보다 잘 안다. 같은 시간에 후배는 자격증을, 나는 한탄을 해댔다. 시야가 밝아지는 기분이다. 해결은 1도 되지 않았지만 해결된 기분. 사회에선 꼰대라고 낙인찍은 그 말이 힘이 될 줄 몰랐다.

 

연민 없는 조언은 꼰대일지 모른다. 적어도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해준 후배의 그 말은, 꼰대가 아니었다.

 

복학하고 누나와 지내며 내면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나누기도 했다. 학부 1학년부터 조력자가 되어준 내 친구와 함께, 중학교 시절 너머 더 근원적 문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사람들을 만났다. 나를 생각했다.

 

생각하고플 때 찾는 이 곳. 학창시절을 함께한 학교엔 히말라야시다, 벤치가 서 있다. 아무도 없어 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만 맴돌 때, 생각한다. 그리고 힘을 얻는다. 물론 달라진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마음은 정리가 되었으니까. 다시금 힘을 얻고 돌아간다.

 

 

필경사 바틀비처럼

사건들은 젖은 솜뭉치처럼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킨 감정선으로 남았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며 잘못 선택한 나를 바라보는 게 고통이었다. 중학교란 담장을 넘어 들여다본 과거의 나를 생각하는 건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사건을 되뇌는 일. 겉으론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 답했지만 나와 함께 과거를 들여다봐준 사람들은 아파한 모습을 본 것 같다.

 

아프지 않다고는 했지만 안에서는 날카롭게 무언가로 찌르는 기분이다. 생채기라 생각했던 아픔이 생각보다 고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참아야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스스로 치유하려 노력했다. 내 결핍을 채울 유일한 기회라고 말이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바람직한 노력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를 배운 건 사실이다. 마음가짐의 변화.

 

잠시나마 쉬고 싶었다. 요람은 아니지만 습관처럼 찾아오는 이곳이 내게 베푸는 최소한의 자비다. 쉼으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겠지만 잠시나마 흐르는 눈물과 고통을 그치지 않을까 싶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년만년 오래 살 듯, 침엽수가 무성했다. 파랗게 물든 하늘은 주변 어두운 소나무와 대비됐다. 그 동안 어둔 주변부만 바라본 게 내 인생이 아니었을까.

 

심호흡하듯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었다. 결정했다. 고인 물에서 나오기로. 『필경사 바틀비』(1853)에서 주인공 바틀비는 계속해서 말한다.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부정의 힘을 선택했다.

 

여전히 달라진 것 하나 없다. 집으로 향하던 순간, 앉아서 고민한 그루터기를 보았다. 언제든 반겨줄 이곳, 쉼은 25년 만에 처음 부정이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루터기
 
뿌리, 줄기, 잎, 열매
봄, 여름, 가을, 겨울
흘러가는 시간
지나가는 공간
 
조그마한 지면에 자리한
그루터기 하나
뻗어나갈 수 없어져 버린
그루터기 하나
 
정체된 그 곳
남겨진 하나의 생명
나아가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오
그루터기 하나
그 곳에서 잠시만 쉬어가오
그루터기 하나
 
다시…
 
지나가는 공간
흘러가는 공간
겨울, 가을, 여름, 봄
열매, 잎, 줄기, 뿌리
 
당신의 그루터기를 바라보오
 
노은석, “그루터기”, 2018.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