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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 분노한다

입력 : 2018. 03. 23 | 수정 : 2018. 06. 07 | A29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당했다.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무리하다는 여론에도 이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해 집행했다. 이제 남은 건 재판이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분노가 휘 몰았던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들은 지도자를 잃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불과 10년 전 일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먹지 말라했고, 전교조라는 이름으로 띠를 둘러 시위하자며 거짓말해댔다. 푸른 기와 아래, 길 잃은 시민을 지켜보아야 했던 지도자가 끝내 구속당한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정권 보복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실재한 죄목 앞에 고개를 떨굴 뿐이다.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검찰이 무리한 전직, 전전직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만큼 보수 진영의 썩은 병폐를 도려낼 것임을 믿는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만큼 정의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검찰도 정권으로부터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할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냉전 체제를 보내고 있다. 미국과 소련으로 촉발한 6․25 전쟁처럼 70년 전 좌우대립을 지금 여기에서도 경험하고 있다. 전적으로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다. 70년 전엔 우익 진영이 승리했다면, 현재 2018년은 좌익 진영이 승리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냉전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는 무너진 지 오래이며 세계화를 이룬지도 오래다. 마르크스 사후 130년이 지났다. 정치, 역사, 문화, 신학,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좌우 대립이 난무하고 있다. 좌익은 마르크스를, 우익은 박정희를 붙잡은 채 포스트 386, 포스트 박정희에서 좀체 벗어나질 못한다.


   그간 보수 진영 역시 좌익 진영과 다르지 않는 양태를 보여주었다. 그 정점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다. JTBC 태블릿이 거짓으로 밝혀진다 한들, 국정원 특별활동비와 박근혜 개인 비리는 방패 막을 수 없는 분명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범죄다. 이 전 대통령도 하등 다를 게 없다. 다스 소송비에 삼성까지 개입했다는 건 현직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만일 보수주의자가 정의를 주장한다면 이 전 대통령 구속에 참담함만 느껴서는 안 된다. 정치공학과 현실 사회가 유리화 된다면, 이 전 대통령을 정치보복이라며 분개만 할 뿐이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함에도 분노하고 있다면, 이는 진영 논리이자 프레임이다. 좌익을 프레임 공작으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프레임 공작하고 있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구분하지 못한 좌익 승리에 진보 진영이 축배를 드는 꼴도 우습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이제부터 학자들이 든 펜에 달려 있다. 그 동안 국민들은 수많은 거짓말에 속았다. 거짓 선동 배후에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성 파악뿐이며, 정치공학적 숙의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가 깨끗하지 않다는 게 김대중, 노무현의 청렴을 증명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필귀정일 뿐이다. 오로지 피해자는 국민들이다. 정치인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며 집단적으로 신뢰해 온 집단 광기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등장한 현상이다. 사유하고 고민하기를 싫어하는 국민들의 게으름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세 번째 타락한 대통령이 탄생하고야 말 것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은 프레임 논쟁에서 벗어나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회복해야 한다.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명박을 지지하거나 진보주의자이기에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한국식 냉전 체제를 반성해야 성장할 수 있다. 적폐청산이란 매서운 바람 같은 칼날에 분노를 느끼며, 부끄러움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프레임이란 아비투스에 대한민국만 칼날에 놀아난다는 걸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