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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신앙/미망이의 신학서재

[미망이의 신학 서재] 通스럽지 못한, ‘통이다 렛츠 통’

입력 : 2015. 12. 09 | 지면 : 2015. 12. 09 | A22


통이다 Let's 통
국내도서
저자 : 조병호(Byoungho Zoh)
출판 : 통독원 2009.09.23

상세보기


미망이의 평점

가독성: ★★★☆

내용: ★☆☆☆

소장가치: ☆☆☆☆

보너스점수: ☆☆☆☆

평점: 총 4점


평점 기준

가독성

① 펜 없이 눈으로 읽기 쉬움 3점

② 펜으로 줄치면서 읽어야 함 2점

③ 각 장마다 요약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경우 1점

④ 각 장마다 요약을 했음에도 어려울 경우 0점


내용

① 독서 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함 3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

② 단순한 새로운 정보의 습득 2점 (다른 곳에 적용 가능성이 없음)

③ 새로운 정보 없이 기존 정보를 재편집 했을 경우 1점

④ 텍스트 오류 발견 시 0점


소장가치

① 평생을 두고 함께 갈 텍스트 3점

② ①의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지만 지인에게 한번 즈음은 추천할 텍스트 2점 

③ 도서관에서 빌려볼 만한 책 1점

④ 안 봐도 그만인 텍스트 0점


보너스 점수

저자에 대한 호의감이나 감동 외에 기타 점수 1점



가독성은 좋지만 그 이상은 없다

길고 어렵지 않아 가독성 好가독성 이상 좋은 장점 없어

당연한 이야기인 ‘통’ 을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말해

정작 자신은 ‘通’스럽지 못해



◇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내용은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졌지만, 큰 범주에서 보면 두 장으로 되어 있다.


   첫 장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다른 문화를 비교하면서 동 서양의 다른 문화에서 나오는 장‧ 단점을 분석한다. 그 후 동, 서양 문화에서 나오는 장점(동양: 거시적, 서양: 미시적)들을 혼합한 통 문화를 제시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최고의 기독교 국가 미국과 아시아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 중국교회 가운데 놓인 한국교회가 서양(미국)과 동양(중국) 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하며, 이 방법론이 성경을 통으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너무 당연한 이야기만을…‘내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는 당연한 전제를 시작으로 해서 ‘포스트 모던시대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이것들의 장점들을 잘 취하여 성경을 바라보자’라고 이야기 한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 명제가 현실화 되는 게 어려울 뿐이다.



텍스트·콘텍스트(text·context)

텍스트는 해석하기 이전의 원전(原典)이다.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 따위에 대한 본문이나 원문을 의미한다. 반면 한 문장 안에 기술된 단어·구·문 사이에 성립하는 의미적 ·논리적 관계인 콘텍스트는 텍스트와 달리 ‘맥락, 상황’으로 부를 수 있다. 둘은 서로 다르다.



  이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말하는 ‘통’이란 방법은 옳은 방법이다. 하지만 정작 이 텍스트에서는 이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물론, 저자는 ‘통’의 관점에서 ‘빌레몬서’를 예화로 들었다. 하지만 이 예화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통’의 관점은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 예화에서는 통시적 관점(시간적 흐름 → 성서시대와 우리시대의 연관성)만을 다루었을 뿐, 텍스트에 내부구조에 대해서 일체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텍스트는 주구장창 ‘통’ 이라는 것을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 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전혀 없고 추상적인 내용만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 통이란 거? 발명인가, 발견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또한 저자는 ‘통’이란 해석적 방법을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방법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저자가 발견(혹은 발명)한 해석 방법일까? 동양의 거시적인 관점, 서양의 미시적인 관점을 합쳐서 보는 방법을 통이라고 하여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방법은 이미 이러한 해석방법은 초대교회부터 있었다.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인 정승태 교수의 ‘그까이꺼 해석학’을 보면 “성경의 텍스트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이해하고자 주해서적을 뒤적이고 낱말과 문장의 의도를 적절히 살펴보기도 한다(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살펴보는 것).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생각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면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의 두 가지 해석 조건들을 살펴보자. 우선 문법적 해석이다. 그에 의하면 문법적 해석은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문법적 해석이란 주어진 텍스트에서 보다 정확한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 표현의 언어 및 그 언의 도움을 받아 텍스트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따라서 슐라이어마허는 텍스트나 단어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 해석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둘째, 문법적 해석은 텍스트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와 그 언어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다른 언어들과의 연관에서 파악 된다”


   위에 기술된 말들을 보면 이미 ‘통’ 이라고 불리는 해석학적 관념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퍼져 있었으며, 설령 이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슐라이어마허의 보편적 해석학(18C) 때에는 이러한 해석학적 방법이 해석학의 정론이 된 상태다. 다시 말해 저자가 주장하는 ‘통의 방법론’이라는 것은 보편적 해석학에 ‘통’이라는 이름과 저자 자신의 보수적인 신앙관을 덧입혀 놓은 것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신앙관이 보수성이라는 것은 뒤에 언급하겠다)


◇ ‘통’스럽지 못한 저자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는 지금 스스로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 성경 읽기가 편협하며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하였지만 저자 역시도 보수 진영의 논리와 같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기독교를 연관하여서 말하고 있다. 필자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승만 대통령은 분명 여러 진영에서 평이 상이한 인물이다.


   만약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저자의 방법인 통의 방법으로 본다면 저자는 이승만의 명과 암에 대해 동시에 조명하고 그것을 오늘날 기준에 있어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전혀 ‘통’스럽지 못하게 보수주의 관점에서만 그를 평가한다.


◇ 양날의 검 ‘객관성’

   객관성이라는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다른 어떤 언어보다 신뢰성을 준다. 그러나 이 말이 진정한 객관성이 아닐 때에는, 이 말을 하느니 만도 못하게 된다. 저자는 객관성, 합리성이란 언어를 ‘통’이라는 자신의 언어로 변환하여 자신의 언어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독자에게 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에 논증에는 실제적인 합리성이나 객관성은 결여되어 있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한 말이 결국에는 끝과 맞지 않아 모순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텍스트가 가질 수 있는 자가당착이 무엇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망이의 신학 서재,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