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기사
이름으로 느낀 촉감과 의미
본연의 모습과 상황 통해서
생각지 못한 관심으로 연결
그리고 발견한 할아버지 댁
최문혁.
이름을 입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게 습관인 나율이의 잠꼬대에 선배 문소혜와 최문정이 놀려댄다.(1단10줄) 언니들의 농담이 들리지 않는 데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무 상관없는 남자애, 최문혁을 만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싸움에 휘말릴 뻔한 나율을 구한 남자애 이름은 최문혁. 남은 것은 문혁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명찰 뿐이었다.
나율의 습관은 옆자리 친구의 이름에서 자신을 구해준 문혁으로 바뀐다. 문혁의 이름을 부른다. 문혁의 이름을 자음 모음으로 해체해 되뇐다. 문혁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나율이 마주친 동네는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이었다. 취재를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하면서 마주친 우연은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펼쳐진다.(3,58) 문혁에 대해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곧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나율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4,51)
호(號)가 익숙하지 않은 나율에게 할아버지의 호 ‘정연’은 수수께끼일 뿐이다. 어른들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기 자신이 허울 없이 부르라고 만든 그 뜻을 고민한다. 나율에게 이름은 누군가의 존재를 상징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지은 이름은 아니지만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 분위기와 느낌, 혀의 움직임을 관찰해 본 모습과 비교해본다. 거친 이름이라 해서 거친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 거친 모습도 있다는 방식으로 다층적 인간상(像)을 구축해 나간다. 따라서 할아버지에게 문혁은 그저 어른들에게도 인사 잘 하는 착한 학생을 의미하지만 나율에게 문혁은 겉은 거칠면서도 속은 따뜻해 보이는 저녁녘, 최무녁으로 재해석된다.
나율은 이름으로 성향과 느낌, 배경을 유추하는 습관처럼 전혀 접점을 가지지 않은 할아버지에게도 관심을 연결한다. 리어카는 할아버지의 배경이다. 시급 1000원도 되지 않은 고된 노동을 이어가지만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고된 인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정연’이 그렇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며 그 이름을 말해주는 할아버지가 나율과 함께 퇴근한다. 도착한 할아버지 댁은 진성동 재개발 3구역. 얼마 남지 않은 폐가 속 유일한 할아버지 댁에서 나율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다. 훈장처럼 벽을 도배한 할아버지의 과거 지면신문은 호의 기원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전쟁통으로 향하던 배 이름을 자신의 호로써 기억하는 할아버지가 숨을 내쉬며 쉬자 나율은 충격을 받는다. 곧 돌아온다던 손자가 문혁이었기 때문이다.(8,32)
문혁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위해 아침마다 박스가 쌓인 곳을 찾아 사진을 찍어 장소를 알려주었다. 생계를 위해 저녁에는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 2022년 기준 한국 참전명예수당은 35만원으로 2000년 당시에는 6만 5천원이었다.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대우, 고된 노동이라는 결과,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노인빈곤에 나율은 “인터넷 어디에도 없다던 글”을 발견한다. 그런 나율은 문혁이라는 이름의 뜻을 깨달았다. 밝은 빛 다시 말해 새벽을 새기라는 포부를 담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문혁에게 대하는 사회의 자세는 이제 져가는 노을일 뿐이다. 한 순간 빛나, 빛을 잃어버리면 그 자체로 버려지는 그런 존재로만 바라본다. 나율은 사회의 소모적 태도를 거부한다.
학보사로 들어오라는 말이 도와주려는 손짓일 뿐이지만 문혁은 거절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 나율이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율에게 진성동 재개발 3구역은 그저 사라져갈 동네에 불과하다. 선배 문정의 취재가 아니었으면 할아버지와 마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율은 이미 문혁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회피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시 문혁이 나율에게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다시 삭제되었다.(11,10)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생각이 바뀌었는지 문혁 자신이 삭제한 것이다.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율이 찾아간 진성동 재개발 3구역, 불규칙한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는 문혁을 발견한다. 문혁의 등에는 할아버지가 실렸다. 낙후된 지역이 말해주는 건 ‘돈 많은 사람은 시간도 산다’는 이면.(11,24)
역설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문혁의 상황을 글로 남기려던 나율은 고민한다. 문혁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지만 지워버린다. 그리고 벌컥 열린 학보사 사무실 미닫이문. 문혁이 학보사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나우[n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ㄹㅇ루다가] 11년 버뮤다순복음교회 ‘퍼피레드’에 “다시 등장” (0) | 2022.09.11 |
---|---|
[마감하면서] 실은 돈이 없어서 사라진 것들 앞에 (0) | 2022.07.26 |
[단편소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0) | 2022.07.26 |
[지금,여기] 노들섬에서도 이어지는 ‘서울조각축제’ (0) | 2022.07.17 |
[지금,여기] 천국과 지옥의 중간, 연옥으로 바라본 전시장:「조각충동展」② (0) | 2022.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