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4. 24 | 수정 : 2020. 04. 28 | C10
처음 녹림청월을 알았을 땐 그렇게 거대한 조직으로 보이진 않았다. 자칭 “뒷담까자고 만들어진 카페”도 아니었고 타칭 “코메 카페 나눠 먹으려고 만든 카페”도 아니었으니. 머지않아 백 명 넘는 회원 목록을 확인하고 ‘주카’라는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회원들을 상대로 공작(工作)질을 벌인 행각이 눈앞에서 드러나자 조금씩 실감이 났다. 2013년 10월, 자유의새노래. 라고 이름 짓는 본지가 창간하기도 두 달 전의 일이다.
코믹 메이플 오프라인rpg 카페에서 독립한 녹림청월 회원들은 “○○○ 희대의 음모론”이란 글에서 아홉 단계 댓글 공작을 수립했다. ①게시판 주카 팬클럽에 침투한 ‘주력 1’은 부 계정으로 “주카를 추종하는 모범 회원으로 입지를 굳히면” ②‘주력 2’는 주카 팬클럽에 들어가 ‘주력 1’과 마찬가지로 신망을 얻는다. ③‘주력 2’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주력 1’은 은근한 바우, 슈미 안티를 모아 녹림청월 같은 카페를 개설하되 주카를 무조건 찬양, 타 여자 캐릭터 비방을 목적으로 한다. ④신망 얻은 ‘주력 2’는 절정에 달했을 때 카페 자료를 몽땅 수집. ⑤‘주력 2’가 자료를 내보여 선언한다. “나는 슈미 팬클럽에 있었는데 주카 팬클럽이 수상하다”고. ⑥대다수 사람들이 좀 오버하며 “세상에나! 어쩌고…” (뒷받침 세력들. 의심가지 않게 적당히 해준다) ⑦부력 5명이 슈미, 에아 팬클럽에 잠입해 “주카 팬클럽이 우리 슈미와 에아를 욕했으니 우리도 복수하겠다”며 주카를 욕한다. ⑧주카 팬클럽에서 반격이 들어오고 코믹 메이플스토리 카페가 혼란스러워진다. ⑨바우 팬클럽은 명실상부한 개념 팬클럽으로써 스위스처럼 박혀 평화롭게 논다.
“그 결과 주카 팬클럽의 위신과 신용이 급강하한다. 동시에 서구라(만화가)와 소독수(작가)도 실망이 어쩌니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靑月**’가 아이디 ‘zb****’를 생성해 주카 팬클럽에 가입했다. 닉네임은 ‘완소주카’였다. ○○○은 댓글로 “○○씨, 부 계정 삘 나면 안 됩니다! 개념 있게 하셔야 합니다. 애들 완전히 물 먹여야 해요”라고 말했으며 ○○○○은 “으아악! 맞다! 이건 프로젝트의 일부! 절대로 완벽하게!”라며 댓글 공작을 ‘프로젝트’라고 명시한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남성이며 카페 스텝이자 캐릭터 주카‘도’ 좋아했던 필명 대한제국은 당해 12월 1일 카페 탈퇴와 함께 탈출한다.
수립된 아홉 단계 공작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도대체 주카가 무엇이고 바우가 누구라서 그러느냐 물을 것이다. 되레 묻고 싶다. 캐릭터 주카를 좋아하는 일이 그렇게도 “찌질한” 일이고 계정만 백서른하나로 공작할만한 일인지를. 자유의새노래는 창간호 없이 1면 상단에 피해자로서의 상흔을 고스란히 남겼다. 본지를 창간한 궁극적 이유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며 잊지 않겠다는 무언의 탈출을 드러냈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가해자에게 너그럽다. 녹림청월은 고사하고 새능력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공동체가 방송실 의자 위에 사람이 비었다는 이유로 신앙을 거들먹거리며 위력(威力)을 가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주여 삼창’으로 자신의 죄책을 덮기 급급하다. 그 놈의 면상이 오늘도 나의 꿈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꿈에서조차 그곳, 어처구니없는 공동체를 탈출해야 했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녹림청월 한 멤버이자 가해자인 그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주카를 싫어하던 시절… 주카 팬클럽에 중요한 일에 쓰고 싶다. 그 대가로 그림을 그려드리겠다고 하고서 얻은 그림을 주카를 패대기치는 슈미의 짤방으로 만들어버리고 당당히 올렸던 정말 싸대기 치고 반성문 쓰게 하고 싶은 흑역사 중의 흑역사가 얽힌 그림이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이 들면서 이렇게 지껄인다. “부끄럽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전부 거기에 담겨 있다.”
처음 인간 서지수에게 끌렸던 이유도 비슷한 방법 똑같은 가면 쓴 이들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처롭게도 트위터, 브이앱,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심지어 본지 검색로그에도 피해자를 조롱하듯 따라다니는 특정 단어가 남는, 지금의 비극적인 조각난 사건들 앞에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위근우에게 “당신은 녹림청월에게 당해보셨는가”라고 묻는 것밖에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게 “그에게 있어 ‘젠더갈등’(따옴표를 쓰는 이유는 내가 젠더갈등, 성별 간 갈등이란 개념에 동의하지 않아서다)의 혼파망 속에서 나온 혐오발언들로 그가 힘들어 했다고 느껴진다면 페미니즘의 당위 문제는 부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테고”라 말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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