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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러블리즈덕질일기

[지수의 생일] 「진리를 바라본다」

입력 : 2020. 01. 30 | 수정 : 2020. 01. 31 | 디지털판

 

33.5×26.3cm 「진리를 바라본다」 2020

스산해진 저녁 어간 여명이 밝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숫자로 헤아리기 어렵 듯 어간(於間)은 상당히 기나 길다. 해방을 기다린 조선의 묻히인 목소리를 되짚다보면 낭만도 무색해진다. 오랜 시간 구원자를 기다리던 기록물도, 지금의 시간을 어둠 속 밤으로 묘사한다(요한 3,2). 밤하늘과 가려진 얼굴들은 저녁 어간부터, 여명이 밝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낸 것이다.

 

그리고 숫자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우리들은 여명이 밝기까지 수많은 이들을 잃었다. 바다에 잃어버린 우리의 친구들, 갑판과 함께 침몰한 전우(戰友), 거센 파도에 수장당한 우리네 인생들, 테트라포드 사이에 숨겨진 숫자들. 그 사이 진리(眞理)를 잃었다(요한 19,39). 세상은 요란히도 애써가며 새벽을 밝혀대지만 조금도 밝아지지 않을 우리들 마음엔 언제쯤 새벽이 찾아올까 묻는다.

 

어두운 파도를 끝내러 앞장 선 오징어 배들 뒤에서 붉은 빛줄기가 되살아난다. 항해박명(BMNT) 여명이 밝아오자 진리는 널 자유롭게 한다”(요한 8,32)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앎은 자유다. 언젠가 이 어간도 끝날 것이다. 붉어가는, 색채로 살아나는, 여명 속에 모든 것이 돌아올 거라고. 그 앎을 기억하는 이 순간,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