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성의 창] 예수가 다시는 부활하지 않았어도

2022년 04월 18일

 

향린교회가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예배당 침탈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교인들은 향린교회 바깥 어두운 골목길에서 초라해 보이는 고난주간을 보내야 했다. 찬송가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힘없이 부르는 침참속 교인들 풍경이 낯설었다. 낯선 것은 예배뿐만이 아니었다. 기도하는 신자 분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십자가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저 예배당 안에서 홀로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그 예수를 우리가 구원해야 할 때”라고 규명한 그분은 예수의 힘없는 무력한 광경을 목도했다.

기독교인에게 신의 전능성은 ‘무소부재’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엇이든 구해낼 수 있는, 무엇이든 가능한, 미래의 일들까지도 감찰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러나 현대인에게 기독교적 신은 허상으로 보일 뿐이다. 전쟁을 막지 못했고, 죽어가는 사람들조차 구하지 못했으며, 고통 속에 신음하는 노동자와 절망으로 스러지는 노인들의 고의적 자해를 막지도, 없애지도 못한다.

한국 개신교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현대 찬송 ‘nothing is impossible’은 말 그대로 신은 인간에게 성도 무너뜨리고 눈먼 자도 눈 뜨게 할 것 같은 착각을 심어준다. 새능력교회도 그렇다. 이름 자체에서 느끼는 것처럼 무능력한 기독교인을 일깨울 담임목사의 욕망 그 자체를 담았다. 이들이 믿는 모든 것 가능한 신 개념과 이들이 살아가는 무능력한 신이 다스리는 지구와 충돌하며 벌어진 불일치는 인지부조화로 이어진다. 전 교인을 상대로 저지른 노동 착취와 “회개하지 않아서” “예배 생활하지 않아서” 행위 중독을 신앙 덕목처럼 설파하는 현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예수는 모든 이들이 바랬던 로마의 해방을 이뤄내지도, 제자들이 바라던 인사도, 손목에 묶인 포승줄조차 풀어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교회생활 하고, 매일 매일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며 통곡함으로써 기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나는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물을 것이다.

 

 

부활의 희망은 미동조차
느낄 수 없던 새벽 여명
가장 어둔 절망적 순간
시간에 갑자기 찾아왔다

 

흥분한 나머지 고린도 서신서를 인용하며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 믿음도 헛될 것”(1고전 15,14)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당시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나귀 탄 예수에게 “호산나!” 소리친 인간들의 욕망이 지금의 한국 개신교회와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어차피 예수는 부활할 테니까. 어차피 예수는 헬조선의 압제를 끊고 우리를 해방시켜줄 테니까. 따라서 갑작스런 예수의 무능함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의 당황한 표정이 교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기력하게 죽지 않았다. 예수는 동성애를 배격하기 위해 힘없이 죽음으로 내딛지 않았다. 예수는 이 지구에 기독교 왕국을 만들기 위해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 예수는 단지 살아났다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예수는 그 따위 인간의 욕망을 이뤄내기 위해 이 땅에서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다.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그 예수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번역하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그 예수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고,(누가 4,18) 마음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했다.(마태 5,3) 그러나 이미 자신의 욕망과 함께 예수를 부활시킨 이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려는 목적’을 부정한다. 그 예수를 무능력한 예수가 아니라 파워풀 초특급 새능력 예수로 만들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리라고 지껄이며 성경을 부정한다. 무력하게 죽은 예수를 다시 죽임으로써 내가 만든 예수를 내세우는 행동이 예수를 시험하던 마귀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묻는다. 당신은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어도 그 예수를 믿을 수 있는가. 설령 당신을 구원하지 못하여도, 당신은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로마의 압제에 그저 힘없이 무력하게 십자가를 지는 그 예수를 따를 수 있는가. 예수가 부활할줄 모르던 제자들은 그 예수와 먹고 자던 긴밀한 관계였음에도 줄행랑(마가 14,52) 뿔뿔이 흩어지고(마태 26,56) 말았다. 그런 예수의 시체 앞에 옥합을 바치던, 니고데모처럼 덤덤한 마음으로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여전히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며 선지자로 취급하던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예수는 빛의 강렬함을 내보이기 위해 가장 어두움을 택했다. 점차 어두워지는 새벽 여명이 오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침묵하며 죽음 상태에 이르렀다. 니고데모도, 제자들도, 여인들도 그 어두움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부정해도 반드시 그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예수의 부활도 예정되어 있다. 그 밝음 속에서 적나라하게 비치는 인간의 모습에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즐거워한다. 욕망으로 얼룩진 인간이라면 두려워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인간이라면 나약한 예수라도 당장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지 않아도. 권력의 오른편에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그 힘없는 예수의 부활을 가장 기뻐할 것이다. 교회는 예수의 죽음에 기뻐할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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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성의 창] 4년 만에 다시 ‘ㅅ’ 교회로 돌아간 이유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담임목사가 설교 중 고함을 질렀다. “전도해야 합니다! 대상자의 이름을 적으세요! 만일 이름조차 적어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는 과거에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펴곤 했다. 나는 어이없는 수준의 설교에 분노했고, 6년간 몸담던 ㅅ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4년 만에 돌아갔다. 떠돌던 3곳의 교회는 모두 비슷했지만, 직전의 교회는 더 심각했다. ㅅ교회의 목사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직전의 교회는 1950년 무렵에 개척한 작은 교회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때였다. 어느 날 담임목사는 설교 중 방역 때문에 시청 직원과 싸운 이야기, 방역 지침의 허점과 본인이 고안한 꼼수를 설파했다. 그러다 이어진 망언.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나노 칩이 혈관을 타고 뇌에 도착합니다. 그러다 나쁜 사람이 5G 주파수로 나노 칩을 조종해 백신 맞은 사람을 조종할 겁니다. 그 백신이 바로 666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헛소리였다. 목사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목사의 강요는 나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나는 설교 도중 목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족을 데리고 교회를 떠나고 만 것이다. 나는 ‘이게 정말 기독교 신앙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진단한 한국교회는 이랬다. 몇몇 목사들은 자신의 욕망, 다시 말해 교인 수 증가와 권력 확대를 위해 문자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성경 구절을 찾아와 교인들을 협박한다. 이때 목사는 ‘자신은 단지 성경을 인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 협박을 들은 교인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목사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안타깝게도 교인들은 이것을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자세였다. 성경을 바로 알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짜고짜 쉬운 성경을

[시대성의 창] 노동력 쥐어짜는 나라라면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병사 월급 200만원에 장교·부사관 사기가 저하된다는 1등 신문 사설 댓글 창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이 나라는 휴전 중인데 의무사병보다 직업 군인 급료가 더 적다는 건 기강과 사기에도 걸림돌이 될 것” “당연히 사병들의 처우는 개선해야 하지만 지나친 혜택은 장교와 갈등만 생기게 한다” “형평성에 안 맞는다. 군대가 놀다 나오는 곳이 아니잖은가” 지난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만 19세~34세 월 평균 임금은 252만원이었다. 병신 같은 댓글 말마따나 한국 안보 가치는 월 평균 임금만도 못한 수준인가보다 생각했다.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라던 생계형 국방장관도 있는 마당에 말해 뭐하나. 언제나 늙은이는 고상한 가치를 들먹이며 자기 이익 챙기기 바쁘다. 다른 말로는 명분인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숱하게 보았다. 자기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고 명분을 끌어와 잉여 노동 착취하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10년 몸담은 교회가 그랬다. 허울 좋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수많은 청년 노동이 착취됐다. 아무런 보상도 급여도 없었다. 번아웃에 교회를 탈출했고 목사는 탈퇴 청년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교회뿐만 인가. 광의적 의미인 국방의 의무를 20대 남성에게 한정 지어 군복무로 해석하던 한국 사회는 대선에서마저 젊은이를 자극했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군사 표퓰리즘’으로 정의한 그 신문은 말한다. “월급 200만원 공약을 철회하면 찬성하는 국민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유로운 법정유급휴가(연차)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30.1%에 달했다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인 중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43%에 달했고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36%였다. 여성은 각각 50%, 45%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측의 거짓말은 노동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①국민연금·건강보험은 순차적으로 납부할 예정이다 ②연차 사용하기 쉽게 조치를 취하겠다 ③무분별한 업무 분장 바로 잡겠다는 세 가지 약속은 세 달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다수 사용자의 인식 때문이다. 주 69시간 근무 제시 병사 월급 공약 절충 값싼 자유·애국 앞에 여론 들끓자 尹 깨갱 지난해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연도별 건강보험 체납현황’을 공개했다. 1개월 이상 건보료 누적 체납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2021년 건보료 누적 체납은 395만 4000건에 체납액만 4조 7057억원이다. 그마저도 2018년 5조 109억원에서 감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바쁠 때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노동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2023.03.06) 1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또는 연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휴가를 모아 ‘제주 한 달 살이’ 가라고 말하지만 한 달 휴가 가려면 최소 11시간 연장 근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루 12시간씩 30일을 일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한국은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도달했다. 세계에 유례없는 수치다. 이제 더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다. 저출생과 혼인 감소는 노동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해야 결혼을 계획할 수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돈 앞에서 각자도생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누가 애국으로 헌신하고 애사심 가지고 노동한단 말인가. 대통령에게 이 나라 애국은 당연한 가치인가. 자유가 당연한 가치가 아니듯, 노동의 가치도 당연하지 않다. 한국은 저성장 국면에 돌입한지 오래다. 인구경제학자 전영수 교수는 인구 감소가 국내총생산 하락으로 이어진 점을 지적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노동자를 쥐어 짜 성장의 막차를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 한다. 대통령부터 200만원 비용을 치루고서라도 지켜야 할 애국이라는 가치를 보였다면 공약 철회 같은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 본인부터 야근수당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신뢰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또 한 사람 동료가 신문사를 떠난다. 중간 관리직이 없어 고생만 하고 이곳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대표에게 내민 시정 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돌아보아도 단 하나 바뀐 게 없다면서 웃을 뿐이다. 무책임한 낙하산 인사는 동료 앞에서 일부였다. 누군가의 노동을 물 쓰듯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비용은 치루지 않으려 한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 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5위다. 그마저도 더 늘리자고 말한다. 과격한 커뮤니티 언저리에서는 이런 말이 나돈다. “이 정도로 착취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그럼 쳐 망해라.”

[시대성의 창] 자기에게 주는 벌 그만 받아요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만민중앙교회가 지쳤나보다. 본지에 실린 글을 상대로 게시중단요청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와 인터콥, 신천지 같은 집단이 기사와 칼럼에 대고 게시중단을 요청하기 일쑤다. 당혹감은 무덤덤해졌다. 지난 12월 명성교회를 끝으로 특정 교회 문제점을 언급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지상파 방송국이 누구보다 발 빠르게 취재하기 때문이다. 문제 많은 교회를 대하는 사회 시선도 바뀌었다.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해 더 나은 사회를 걱정하는 자세가 예전과 달라진 덕이다. 달라지지 않은 건 어머니의 친구였다. 풋풋한 청년 시절 만민중앙교회를 다니던 어머니 친구 이야기 말이다. 어머니는 친구 이야기를 자주했다. 걱정 때문이다. 자칭 목자라 불리던 이재록 씨가 구속되고도 목자의 권능을 강하게 믿었다. 구속 이후에도 변함없는 신앙과 흔들리지 않는 교회 분위기도 전해 들었다. 이재록은 상고심에서도 패소한지 오래다.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예배당이 무너져서도 다니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전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쯤이면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도 받아야 하거늘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신앙심이 놀라웠다. 언제나 모든 종교 피해자를 보노라면 안타까운 감정이 밀려온다. 대법원은 이재록에게 다음의 판결을 내렸다. “종교적 권위에 억압되어 항거하지 못하는 피해자들 상태를 이용해 여러 차례 간음하거나 추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 어머니는 어렸을 당시의 친구에게서 착한 성정을 발견했다. 착해도 너무 착한 게 문제라고. 너무 착해서 교회가 잘못해도 잘못으로 받아들이질 못한다고 말 잇지 못했다. 나도 참여교회 신앙이 옳은 줄로 믿었을 땐 방송실에 곧 빌 내 자리를 걱정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 누가 나 대신 일할지를 두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내 인생 걱정하기도 바쁜 시대에 교회 걱정이나 하다니. 어차피 신이 살아있다면 참여교회를 지켜줄 텐데. 어머니의 친구도, 나도. 교회가 무너지면 어떡할지를 걱정한 것이다. 늘 나는 내게 미안했다 교회에 맞서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지 못해서 돌아오잖을 시간 앞에 짊어진 짐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내가 교회를 탈퇴했을 2016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만민중앙교회 다니는 친구와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교회를 다녀도 걔는 내 친구야.” 독실한 기독교인에서 무신론자가 된 나지만 여전히 엄마는 엄마이기에 교회에 대한 분노가 확장되지 않았다.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이 된 엄마는 종교가 달라진 것 말고도 변한 게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원망도 하면서 믿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믿어. 그 하나님을 느끼고 있어.” 엄마의 삶은 신의 숨결과 함께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려는’(요한10,10) 예수의 말처럼 달라져갔다. 그리고 엄마는 또 한 가지 친구의 에피소드를 기억해냈다. “걔가 말이야 학창시절 때 가출하는 나랑 친구들을 붙잡아주지 못한 걸 미안하게 생각해하더라.” 사람이면 누구든지 보이지 않은 짐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나는 교회를 향해 온몸으로 투신한 과거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짐으로 들었다. 어머니의 친구는 지금도 학창시절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짐으로 들었다. 그런 어머니는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야, 학생 때 네가 얼마나 생글 맞게 굴었는지 아니? 나나 다른 애들 가출했을 때 네가 도와줬잖아.” 그 말을 들으며 친구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경화 작가 청소년 문학 소설 ‘안녕히 계세요, 아빠’에서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빠를 대면한다. 어머니의 거짓말과 달리 아빠의 집에는 불륜으로 바람난 여자도 없었고 자신에게 무심할 뿐이라던 상상 속 아빠도 없었다. 그저 아빠는 아빠로 서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집착하던 엄마라는 세계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아빠에게 말한다. “이제 아빠도 엄마가 주는 벌 그만 받아요.”(161,7) 교회는 끊임없이 신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기만한다. 죽음 이후를 보장한다고 거짓말한다. 만들어진 가치를 숭상한다. 아버지를 찾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간 주인공의 용기처럼 교회를 벗어나 신에게 달려가기까지 지옥에도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만민중앙교회 다니던 피해자들에게 진실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짐을 내려놓고 싶어도 놓기 어려운 마음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못해 미안한 마음의 짐조차 지려하지 않는다. 모든 짐은 오로지 피해자 몫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미안한 짐만큼은 덜어도 괜찮다 말하고 싶다. 지나간 청춘은 돌아오지 않기에. 지금도 자기에게 주는 벌로 황량한 사막을 거니는 모든 피해자들에게 “다 지나갈 아픔”일 거라고.

[시대성의 창] 난 여전히 ISTJ일 뿐이라고

브라우저가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다시 버뮤다순복음교회가 문 열었다.(2022.09.03) 한국교회 유일 메타버스 교회가 2016년 8월 23일, 6년 지난 그 모습 그대로 게임 퍼피레드에 복원된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다시금 기억을 마주하자 감격했다. 흠이라면 접속조차 불가했던 정식 출시 첫 날의 퍼피레드 로그인 오류, PC버전과 다른 조작감, 생각보다 모자란 그래픽 퀄리티는 때론 짜증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어두운 예배당을 따뜻한 조명으로 비추자 한줄기 빛처럼 감동이 밀려왔다. 교회와 퍼피레드 복원은 기억이 오브제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로지 바뀐 것은 우리의 몸, 성숙한 정신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한 신학자는 20년 전 교회의 ‘역할 독점’을 비판했다. 교회는 중세시대 이후 한 번도 자신의 절대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역할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구원의 대리자였다. 구원은 오로지 교회를 거쳐야만 이룰 수 있기에 천년 넘는 시간 독점해 왔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달랐다.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이들을 반겼다. 교회가 처음이어도 괜찮다. ‘추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말 그대로 누구든지 환영하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앞에서 ‘몸의 성장’ ‘성숙한 정신’을 말했지만 나는 여전한 것 같다. 혼자이기를 바랬던 고등학생 시절,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어 몸과 정신은 움츠릴 뿐이었다. 게임하고 농담하기 바빠야 했지만 극도로 예민했기에 언제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렸다. 말도 섞지 않았고 마음과 생각에는 ‘예수를 기억하라’던 이념만 가득했다. 장래희망은 목회자였다. 담임도 걱정했다. 사람을 상대해야 할 직업인데 움츠린 몸짓이 전혀 목사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입학하면 망가질 영혼이 될 거라고 걱정한 어른도 있었다. 그러나 선택은 오로지 내가 하기에 말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인가’ 절망했다. 졸업 이후의 삶은 모두가 알 듯 처참함뿐이다.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달라지지 않은 성정 변함없는 가치 앞에 과거의 나에게 내민 용서와 화해의 손길 10년이 흐르고 성향이 바뀌었다. 출발은 교회를 탈출하는 데서 시작했다. 기독교라는 옛 옷을 벗으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나만의 세계에 찾아와 준 사람들을 맞이했다. 잦은 왕래에 조금씩 빗장을 열었다. 1년 365일 내내 어둡던 하늘이 개었다.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누구보다 사람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계 같던 깡통뿐이던 내게서 감성을 느꼈다. 망가져가던 사람이 되살아나는 내용의 에피소드에 눈물을 머금었다. 먼 것만 같았던 여자애가 다가왔다. MBTI 따위엔 관심도 없던 내게 성향을 물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었다. 10년 전 내가 궁금했다. 그 시절 MBTI는 ISTJ였다. 한 자리만 빼고 정반대 성향으로 바뀐 것이다. 달라진 줄 알았건만 퍼피레드 복원에서 과거의 나를 느낀다. 한 몸에서 서로 다른 두 성향의 존재를 느낀다. 죽은 신(神)을 믿고 저돌적인 인간이 되었으며 누구보다 다채롭고 풍부한 감성적으로 바뀌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성정(性情)을 마주한다. 달라진 것들 사이에서 달라지지 않은 게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 앞에서 꼭 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교회를 나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허물어졌다. 후회와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한 과거를 에둘러 지우거나 부정할 필요도 없었다. 퍼피레드와 버뮤다순복음교회 앞에 옛날의 내가 발현되어도 그 때의 나를 품어줄 용기와 마음이 샘솟는다. 비로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듯,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지금도 농담처럼 묻는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기겁하지 않을까라고. 지금은 대답이 달라졌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기겁할 테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바뀌어 온 삶의 족적을 알기 쉽게 설명해줄 거라고. 체념과 후회로 과거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극복해야 할 존재로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과거의 나도 나 자신이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나에게 설득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으며 친절하게 대한다면 나와의 화해뿐만 아니라 누군가와의 화해도 가능한 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김혜진 작가 청소년 문학소설 ‘밤을 들려줘’에서 발견한 ‘다층적 공간’은
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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