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국 사태라는 어른들의 정치를 바라보며, 소외된 세대는 슬픈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2020년 12월 24일

사랑의교회에서 바라본 서초동 집회의 광경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집약되어 있었다. 노무현을 넘어서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조국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두 가지 세력으로 갈리고 만 서초동과 광화문 네거리엔 각자가 지켜야 할 존재들이 상징폭력으로 등장해 굿즈와 함께 소비되었다. 염원과는 다르게 법원은 23일 1심에서 열다섯 혐의 중 11개를 유죄로 인정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1억3894만원의 실형을 선고해 법정구속 했다.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제출하기 위해 조 전 장관과 함께 허위 내용의 확인서를 발급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허위 서류는 대학들의 전형 업무를 방해했다. 조민씨는 가짜로 만든 스펙으로 부산대 의전원에 합격까지 했다. 동양대 총장의 표창장 위조와 입시 비리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본 재판부는 7가지 서류 모두 허위로 판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펀드 관련 혐의도 일부 유죄로 판단한 법원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2억3000만원 부당이득을 얻은 자본시장법 위반과 범죄수익은닉. 차명계좌를 개설한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증거 은닉 혐의 역시 동생 정모씨에게 관련 서류를 은닉하라고 지시한 부분이 유죄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을 일으키고 우리 사회 믿음을 저버려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정경심 교수가 자신의 잘못에 단 한 번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재판부의 판단은 조국과 그 가족을 믿었던 이들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일으켰다. 지난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 나라의 갈등에는 조국이 서 있었고 그를 지지하던 이들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믿고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표창장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지적하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던 낯익은 풍경은 친문 지지자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봉사활동 기간이 일치하지 않음에도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의 입 틀어막으며 집단 논리로 우겨댔다. 개싸움국민운동본부는 집단 논리의 극치다. 사람들의 목소리만 모을 수 있으면 거짓이 진실로 바뀐다고 믿는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수사도 문제다. 조국을 넘어 추미애 아들에까지도 압수수색한 검찰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민씨에 대한 무리한 기사를 배치한 조선일보의 그 오보도 이해하기 힘들다. 빨갱이 조국을 외치면서 광화문 네거리에 모이고서 코로나 지역감염을 확신시킨 일부 신도들도 어처구니없다. 지난 10월 광화문 네거리와 서초동에 모인 20대는 각각 4.6%, 8.5%를 기록했다. 청년들은 조국(祖國)에 관심이 없다. 먹고 사는 현실 앞에 정의와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낳음을 당했으니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슬픈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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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사설] ‘김용철 새능력’이 체제경쟁 대상이라 생각하는 정신머리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새능력의 김용철은 유독 ‘믿음’에 방점을 두었다. 그의 스크립트를 분석해 보면 ▲믿음=74회 ▲부활=54회 ▲사망·죽음=54회 ▲하나님=26회 ▲죄=22회를 언급했다. 특히 그가 “~줄로 믿습니다”를 말한 맥락을 살펴보면 종결의 강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수십 번 나오는데 LLM 인공지능 클로드는 “기능이 독특하다”고 평했다. 주장을 사실처럼 만들지 않고 ‘믿음의 영역’에 가둬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회복시키십니다”가 아니라 “회복시키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반증 불가능해지는 구조다. 안 되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 되고 되면 ‘믿음의 결과’인 것이다. 이 종결 어미 하나가 설교 전체를 검증 불가한 구조로 만들었다. 김용철의 스크립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특징이 선명하게 보인다. ①설교 전체에서 대여섯 번 반복되는 ‘위기-해결’ 구조: 단일한 구조가 청중이 어디에 있든 ‘내 문제도 해당되겠다’는 느낌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 문제는 이게 설득이 아닌 패턴 주입이라는 것이다. 부활이 왜 그 위기의 해답인지를 한 번도 연결하지 않는다. 그저 위기 다음에 부활이 나오니까 청중이 연결되는 것처럼 느끼게 할 뿐이다. ②예수가 부활했다(전제)-믿으면 너도 산다(결론)-아버지가 나았고, 쌀통에 쌀이 나왔고, 바울이 순교했다(근거): 이건 신학적 논증이라 할 수 없다. 귀납도 연역도 아니다. A가 B와 비슷하니까 A에서 일어난 일이 B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A와 B가 왜 비슷한지 먼저 보여야 한다. 그러나 김용철의 스크립트에서는 그 과정이 없다. 성경은 전부 결론을 지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로마서 6장, 고린도전서 15장, 요한복음 11장을 인용하지만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문맥이 무엇인지, 원어가 무엇인지 단 하나의 설명도 없다. 성경은 감정 고조의 타이밍에 삽입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김용철의 스크립트는 오직 청중을 위기 속의 존재로 몰아넣는다. “삶이 무너졌나요” “건강에 어려움이 찾아왔나요”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청중의 현재 상태를 결핍으로 규정하고 그 결핍의 해답을 설교자가 독점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해답은 언제나 교회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예배당에 와야 하고, 믿음을 고백해야 하고, 설교자의 언어를 따라 해야 한다. 청중이 스스로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설교자를 경유해야만 한다. 교인의 실명과 자산 규모를 비유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설교자가 교인의 삶을 알고 있다는 과시를 의미한다. 알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는 이 섬뜩한 맥락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가. 새능력은 10년이 넘는 기간, 광고 말미에 경고 메시지를 던져왔다. “외부인과의 성경공부를 절대로 금한다. 이단에 미혹이 되어 지옥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설] “환단고기는 위작이다” 대통령은 이 한 마디가 어려운가

1979년 이유립이 출간한 ‘환단고기’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점이 명확한 위작(僞作)이다. 가장 근본적인 결함은 원본 자료의 부재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편찬했다고 주장되지만 이유립이 이를 출간한 1979년 이전까지 검증 가능한 실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계연수는 1916년까지도 천부경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1911년에 편찬했다는 ‘환단고기’에는 이미 천부경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 연대와 인물의 실제 행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환단고기’가 위작이라는 점은 주류 역사학계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기경량은 이를 “전형적인 날조 문헌”이라고 규정했고, 정요근은 “전문 역사학의 연구 결과와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동일 선상에 놓고 진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반병률 역시 “‘환단고기’ 논쟁은 연구 방법론과 검증 기준이 전혀 다른 주장을 학문적 이견처럼 포장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12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하며 검증된 역사학과 유사역사학을 마치 ‘관점의 차이’인 것처럼 발언했다. 이는

[사설] 열한 번의 여름, 미디어그룹을 만든 겨울의 언어

자유의새노래 미디어그룹의 출범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롯이 한 사람의 기억을 담던 그릇이 이제 많은 이들의 기록을 품는 그릇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열한 번의 여름을 지나쳐야 했다. 그 사이 겨울의 언어로 아로새긴 추위와 고독, 결의가 지금도 선명하다. 이 신문의 방향을 가른 것은 외부의 세력도, 미지(未知)의 존재도 아니었다. ‘바뀌어야 산다’는 절박한 마음이 오늘을 만든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 새능력교회의 비정상적 신앙은 세상을 둘로 가르고 인간성을 거세했다. 그 거세된 인간성 속에서 내면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그 아이를 오래도록 ‘소녀’라고 불렀다. 소녀는 인간을 사랑하고 삶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하나된 자아를 추구하는 존재였다. 동일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상징했다. 그러나 교회의 극단적 교리는 소녀의 존재를 부정했고, 신의 침묵은 소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 이 신문의 역할은 죽은 소녀를 되살리는 일이었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억 보도’뿐이었다. 다채로운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배치함으로써 소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리워하며, 애도(哀悼)하는 일뿐이었다. 겨울의 언어는 죽은 소녀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약했다. 그렇게 죽은 줄만 알았던 소녀를 다시 살려낸 것은, 교회로부터 해방을 맞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죽은 줄 알았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추억이 기억의 재편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되찾자, 숨죽이며 기다리던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비로소 소녀의 역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며 삶을 다시 재편하는 일이었다. 자신과의 화해는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나를 의탁(依託)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부모와의 화해, 지인과의 화해 그리고 악마라고 믿었던 이들과의 화해로 이어졌다. 그렇게 열한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드디어 한 시대, 서사의 끝에 서 있다. 오랜 시간 고대하던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본지 미디어그룹의 출범은 곧
Today소랑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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