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 09.09 | 수정 : 2019. 09. 11 | B1
조영남이 교회 옥상에서 공연을 펼치자 한국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일보는 1970년 9월 16일자 기사에서 “인기 가수의 팝송을 곁들인 새로운 예배 형식을 시도하여 일반 교역자나 많은 청소년 신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기존 교회의 저항과 젊은이들의 관심을 보도했다.
‘京東敎會 새 形式의 파문’.
경동교회는 파격적 교회였고 강원용 목사는 과감한 성직자였다. 따라서 틀에 매이지 않았다. 교회는 곧장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박자도 느리고 재미없는 찬송가 대신 팝송을 도입하자는 입장과 과연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회의적 시각이 충돌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드럼과 기타 없는 교회는 없다.
옥상교회 위 조영남
파격적 교회 행보 보이자
두 갈래 갈라진 한국교회
신 죽음의 시대?
70년대 장충동 경동교회
하지 못한 일을 진행하다
◇춘원도 혀를 차게 만든 교회 지상주의(至上主義)
50년이 지난 파격적 교회는 지금도 장충동에 우뚝 서 있다. 한국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춘원(春園) 이광수가 교회 지상주의를 “무엇이건 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모두 악이라 하였다”고 비판했듯, 오늘날 교회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전자음악)조차 어색해한다. 하여튼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면 감정 판단으로 “하나님 중심주의”를 남용한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2019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교회보다 재밌는 건 많다. 이젠 청년들도 일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치어 교회에 발도 들여놓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오죽하면 ‘신 죽음의 시대’라고까지 표현했을까? 경동교회는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옥상교회에까지 딴따라(?)를 부른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지코(ZICO)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부르는 그런 느낌? 암만 생각해도 이 비유도 틀린 것 같다. (절레절레)
그런데 1969년 11월, 강원용 담임목사는 한국교회가 이제껏 하지 못한 일을 과감히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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