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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러블리즈덕질일기

지애 누나 만세

입력 : 2018. 10. 31 | 수정 : 2019. 06. 11 | C2

동성애 담론 이해하기엔
성서 본문은 한계를 가져
재해석해 神 숨결 느껴야

동성애만큼이나 전문가로 빙의해 성서를 조각내기 쉬운 소재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불과 4년 전, 일베에서 반동성애를 주장하다가 반성하게 된 현재까지의 과정을 되새겨보며 논문을 정독했다.

논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서는 현대 동성애 논의에서 해답을 줄만한 자료가 많지 않다는 점. 다양한 동성애를 구분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 통상 기독교인들에게 알려진 오해의 해석. 성서가 쓰인 문화에서 살펴보아야 함을 강조하며 토라─그리스─로마─유대교─복음서─바울서신─일반서신─퀴어신학에서 등장한 동성애 담론을 전체적으로 훑는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성경을 크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분하지만 신약 또한 세 등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자 공동체가 예수의 행적을 문자로 담아 놓은 ‘복음서’와 사도 바울이 기록했다고 알려진 ‘바울서신’, 그 외  ‘일반서신’으로 구분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동성애 구절을 접하다보면 성서로 현대 성 담론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신학이 사회과학과 접목될 필요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교회는 사회과학이나 철학, 심지어 자연과학까지도 죄악시하며 반지성주의를 자랑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느님의 진리를 따라야 한다면서도 주장과 사실을 혼동한다.

동성애로 가슴 아파하는 이들과 말 한 마디 섞어보지도 않고 토론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면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동성애자들 이미지로 악마화하기 십상이다. 그들은 그럴 것이다. 그들은 사악하다. 그들의 웃음은 비웃음이다. 오늘날 인터넷 상 기독교인들이 과거 5년에서 10년 사이 난폭해졌음을 느낀다.

커뮤니티나 교회에서 논의 중인 담론을 모아 종합하면 ‘동성애자 없는 토론’이자 ‘쉐도우 복싱’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려웠다. 대개 동성애자들은 더러울 것이고,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변화되어야 할 죄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신학자 제닝스도 조심스럽게 퀴어신학적 해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성서가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행위, 혹은 관계로 받아들여 본문을 형성했다고 보기엔 문화적 맥락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러블리즈 지애(26)가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이다(2019. 6. 4). ⓒ걸그룹문화사절단


그럼에도 성서는 구약과 복음서, 바울서신에 이르기까지 폭력적이며 남성 중심적 성행위를 지적한다.

마태복음서 5,28에서 ‘음욕’을, 나는 여성이나 타자를 자기 방식으로 인식하는 폭력적 행위를 지시한다고 해석한다. 복음서 예수가 말한 ‘간음하지 말라’는 문자(행위)를 넘어 동기나 목적으로까지 폭력을 넓게 해석하게 된다.

담배가 성경에 없기 때문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주장이 의미를 상실하는 이유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 숨 쉬는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수록 나는 그 분의 현존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신 죽음의 시대에서,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은 척을 한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제기하고픈 이유다.

아직도 교회는 성서 안에 갇힌 듯하다. 하느님은 환경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가르치면서도 여전히 성서 안에서 만들어진 신과 만들어진 존재를 두고 쉐도우 복싱하기 바쁘다.

지애 누나도 그렇다. 아이돌로서 유지애와 여성으로서 유지애, 언니로서 지애가 다르듯 지애를 디지털 지애 누나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하나의 이미지 내지 내가 만든 이미지로 지애 누나를 좋아하고 숭상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찐따’ 내지 ‘유사연애’라고 조롱당하기 쉽다.

그러니 부디, 한국교회는 성서에 갇혀 예수와 유사 연애를 그만했으면 한다. 지애 누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