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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 지구를 구하자는 것도 아니고

2026년 05월 09일
나와 함께 일을 한지 네 달. 신입 동료를 따로 불러 윽박을 질렀다. 이유는 다섯 가지, 사진을 꺼내 들어 문제점을 거론했다. “편집의 기본이 안 돼 있다.” “상식 아닌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말투만 조근조근했지 속에는 칼날이 서려 있음을 나는 안다. 잘 못하는 건 당연하다. 신입이기 때문이다. 있는 놈, 없는 놈 화(火)란 화는 다 내다가 내지를 화가 다 떨어졌는지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미 동료는 눈물 한 바가지를 쏟고 나서였다. 이렇게 마음 여린 사람에게 너무 윽박을 지른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꺼냈다. “우리가 지구를 구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오랜 취준 이어가던 여자친구는 어느 날 내 위에 올라타 엎드렸다. 어두운 표정은 이내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취업이 서러웠는지 한참을 울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 달에 25만원이라도 지원해준다는 이재명식 약속과 이 말이었다. “우리가 지구를 구하자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살자는 건데. 세상 참 각박하게 구네.” 체념일까, 정당화일까. 완벽을 요구하고 몰입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되뇐다. 상대방을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나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입사 다섯 달, 동료는 드디어 일 감각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새 회사에서 일한 지 두 달째다.

[한눈금] 18세 국민연금

2026년 05월 09일
10대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순 출처: 국가데이터처 청년의 기피 대상인 국민연금을 자진해서 가입한다는 통계가 눈에 띄었다. 국민연금 10대 임의가입자가 2023년 4814명에서 올해 1월 1만2245명으로 2년 새 두 세 배 늘었다는 기사였다. 18~ 19세 인구 대비 10대 임의가입률이 높은 지역은 경기도 과천시(3.63%), 서울 강남구(2.88%), 종로구(2.45%), 동작·송파구(2.41%) 순이다. 전국 평균 1.28%의 2~3배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수령액이 커진다. 강남 부모의 재테크로 입소문이 탄 게 원인이라고 한다. 코스피 7000 시대, 강남부모는 달랐다. 선진국 어디에도 그냥 없어지지 않은 공적연금의 가치. 지급 중단이 아닌 삭감으로 갈 거라는 예측. 그래서 손해 볼 게 없는 가입. 자식에게 미래를 투자하는 또 다른 베팅.

[사설] 그저 ‘병사1’로만 생각하는 정신머리 이런 게 해병 없는 ‘해병 정신’

2026년 05월 09일
2023년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13명의 해병대원과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전에 투입된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2년 10개월 만에 법원은 1심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2026.05.08) 포병 대원이 구명조끼도 없이 허리 깊이까지 물에 들어가는 건 수색 작전이라 할 수 없다. 상급 지휘관의 성과 집착이 대원의 몸으로 지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임 전 사단장은 수중 수색 사진을 보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시”라고 밝혔다. 과실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죗값은 징역 3년이었다. 특검은 5년을 구형했음에도 대원의 생명을 담보로 작전 성과로 밀어붙인 지휘관에게 법원이 매긴 값이 고작 그뿐이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선고 직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군 복무로 나라를 바친 이들이면 먹먹해질 물음이다. “아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가볍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겠느냐.” 임 전 사단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건 내가 아니”라는 장문의 이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재판부는 “오랜 재판 경력에서 이런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해병 정신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해병의 죽음 앞에서 한 행동이 그것이다.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2023년 7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하려 했을 때, 누군가 그것을 가로 막았다.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통화 뒤 14초 후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됐다. 이첩을 막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이 임 전 사단장의 과실치사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말단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군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 관행을 깨려 한 건 해병대수사단이었고 그것을 다시 덮으려 한 것이 침묵의 권력이었다. 해병 정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누구보다 해병의 죽음을 덮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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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소랑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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