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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미망이의 신학 서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잃어버린 교회

입력 : 2018. 03. 17 | 수정 : 2018. 04. 22 | 지면 : 2018. 12. 18 |  A26


미망이의 평점

선물 받은 책이기 때문에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국내도서
저자 :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M. Hauerwas),윌리엄 H. 윌리몬(William H. Willimon) / 김기철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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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한민국 기독교인에게 교회는 무엇일까. 아마 ‘예배하는 곳’이지 않을까. 특히 한국교회는 특정 지도자 중심으로 카리스마형 대형교회를 만들고 예배와 봉사를 강조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교회라는 뜻인 코이네 그리스어 ‘에클레시아(εκλλεσια)’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제자들의 공동체’라는 뜻이다. 이것만 보면 교회 특성 중 강조되어야 할 측면은 공동체성이지 예배와 봉사 같은 제의가 아니다.


본문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진정한 교회 의미인 공동체성을 잘 설명해준다. 물론 한국 정서에서 교회생활을 한 우리에게 저자의 개념은 갑옷을 입은 다윗처럼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원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상과 맞지 않다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저자가 말하는 바에 귀 기울이고 듣는 자세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꼭! 필요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우리에게 필요한 본문이지만, 그다지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어려운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는 건 아니다. 많은 부분이 예화로 첨부해 가독성이 좋아보일지 모른다.


처음엔 본문을 약 1시간 30분 만에 읽었다. 하지만 독서를 하고 저자의 의견을 생각해보니 기─승─전─공동체 외에는 남는 게 없었다. 다시 말해 왜 공동체를 추구해야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건 뭔지 전혀 머리에 남지 않았다.


결국 두 차례를 더 읽었다. 하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도 본문은 여간 만만하지 않았다. 주로 예화로 이루어지다보니 명확한 논리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장에는 이야기 반복이어서 내용 구분이 쉽지 않았다. 이런 부분이 개인적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동체성 잃은 현대교회

에클레시아란 세상에서 부름 받은 공동체를 의미


공동체성, 필요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고, 공동체성에 대한 당위(當爲) 빠져

현대신학의 도덕 결여 비판하지만 공관복음서에 편협

개인 對 집단. 공동체가 문제 해답일지, 답 없는 저자


템플이 되어버린 교회

가나안 성도에게 가슴 아픈 본문일 테지만,

공동체 잃은 교회에 일깨우지 않을까



◇두 가지 의문: 공관복음 성서해석과 유일한 해결책인 공동체주의

몇 가지 의문도 들었다. 첫째, 성서해석 문제다. 저자는 공동체 관점으로만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성서학은 과학적 원리를 가지고 성서 형성과정과 원 저작 의도, 그들이 처한 환경을 심도 있게 가르친다.


저자는 현대신학을 도덕이 결여된 해석으로 일축한다. 물론 성서는 신앙 공동체 문서이기에 공동체 관점에서 해석된다. 그렇다고 현대 성서학 자체를 무시하는 건 과거 영지주의와 같이 또 다른 해석 오류를 낳지 않을까.


2003년 석사논문으로 나온 ‘Stanely Hauerwas의 윤리 사상 연구’ 논문에서 발제자는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성서해석관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관은 대부분 현대자유주의자의 성경 연구관과 동일하며, 또한 편협하다. 그는 공관복음서(특히 산상수훈, 마가의 수난예고,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에 관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를 인용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요한복음은 거의 인용하지 않고 있으며, 사도행전 역시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에만 하우어워스가 이야기하고 싶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가장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공동체가 모든 해답일까. 기독교는 불교와 달리 개인 해탈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실행하는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이 부분을 과하게 주장한 게 아닐까. 공동체가 개인의 실존적 자아와 구원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에 많은 의문을 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질문이 뒤 따른다. 기독교의 자아는 공동체를 통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동체를 통해 형성된 자아가 참된 자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참된 자아는 또한 무엇인가. 같은 의문을 답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저자는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번은 권하고 싶은 본문

따라서 본문이 썩 좋아 보인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독성이 좋지 않고, 저자 주장은 극단적이며 과연 한국교회에 얼마나 적용가능 할지 의문이 든다. 완전하지 않은 주장으로 교회 공동체에 상처 받은 가나안 성도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본문인 거 같아 좋다고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에게 한 번 즈음은 이 본문을 권하고 싶다. 오늘날 잃어버린 교회 공동체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기독교는 그 위세가 커져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종교가 되었기에 이천 년이란 세월을 살아남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공동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개인의 제의적 요소를 달래주는 템플(사원)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문은 현 기독교가 잃어버린 공동체성과 기독교 특유의 정신인 하나님 나그네 된 백성의 정신을 일깨워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