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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케이가 미친 듯이 좋았으니까”

입력 : 2018. 03. 17 | 수정 : 2018. 04. 22 | A28


#집단 기억의 러블리즈: 사진덕 인터뷰


단순한 감정에서… 음악, 방송 자료를 보며 팬이 돼

여행 좋아해 카메라 하나 들고 나만의 사진 수집해

팬사인회 당첨 기준이 높아지자 그제서 환멸감 느껴

케이마저 자신을 잊자, 속상한 마음 어찌할 수 없어


걸그룹이 사회 대안으로 발전했다. 아이돌 상품론을 연구한 서강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이준형 연구자는 아이돌을 ‘상품이면서도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로 정의했고 엔터테인먼트사에 의해 구상 권한을 넘김으로서 초상품화적이고 초착취적 실행 과정만을 수행하는 존재로 지적했다. 이는 종교화 된 걸그룹이 한국 개신교의 오순절과 다르지 않다. 대형교회의 시스템과 비슷한 현상을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집단 기억으로서 광장 현상, 동지적 관계, 사회 대안격 요소로 등장했음을 알려준다. 걸그룹 대안 현상이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이 종교화 된 점이며 자기 착취적이기 때문에 한계를 가진다. 사진은, 지난 2월 인천공항에서 찍힌 러블리즈 멤버 케이(2018. 2. 26). ⓒ걸그룹문화사절단



단순한 감정이다. ‘애정’. 걸그룹 세계에 발을 딘 이들이 하는 말이다. 단순한 감정에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여성을 사랑하기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우연히 러블리즈를 찍어 준 ‘사진덕(찍덕)’을 만났다. 그가 우연히 러블리즈를 만났을 때처럼.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이 일이라는 게 찍덕을 말하는 거 같은데, 난 찍덕하기 이전부터 그냥 가벼운 팬심으로 러블리즈를 좋아하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러블리즈가 롯데월드에서 나이트파티 행사를 뛰었는데 친구랑 놀러갔다가 실물을 처음 보게 됐고 생각보다 음악이 좋아 끌렸다. 걸그룹에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던 상황에서.

   그 후에 러블리즈 관련해 음악이나 방송출연 자료를 모아보며 팬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케이(김지연·23)를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아츄(2015. 10. 1) 활동 때부터 팬 사인회도 몇 번 갔고, 행사도 수도권 위주로 시간 있으면 갔다.

   아이돌 행사나 팬 사인회에 대해서 경험이 없었다.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무리들을 보게 됐다. 마침 여행을 좋아해 가지고 있던 카메라(DSLR) 하나를 들고 잘 나오든 못 나오든 나만의 사진을 수집했다. 그게 찍덕하게 된 계기다.”


─이 일을 한 ‘총 기간’과 준비, 활동하면서 사용한 경비는 어느 정도인가.

   “음……. ‘아츄’로 막 컴백했을 때부터 ‘와우(2017. 2)’활동 초기까지 했던 것 같다. 기간으로 따지면 2015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경비라고하기에 광범위한데, 일단 가장 큰 게 카메라 가격이다. 본격적으로 찍덕으로 활동하면서 약 500만 원 정도. 니콘 D750이랑 70-200V2 렌즈가 장비였고 렌즈가 필요할 땐 가게에서 빌려 썼다.

   행사…. 2016년도는 러블리즈 행사라면 거의 다 간 것 같다. 90%정도. 거기에 팬사인회도 시간되는 대로 다 갔으니, 교통비랑 렌탈 비용 합치면 못해도 1,000만 원은 될 듯.”


─케이에게 호감이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어떠한가. 찍덕 마이너 갤러리 회원들에 의하면 가족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덕질하고, 찍덕하는 기간에 내 최애(최고로 사랑하는)가 케이인데 그 때 만큼은 케이가 진짜 인생의 전부라고 느껴졌다. 러블리즈 여덟 명 멤버를 1,000장 찍었다고 한다면 800장은 케이다. 그 많은 사진을 정성들여 보정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웬만한 애정 아니면 못한다.(웃음)

   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하니까,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결과물이 좋아야 나오는 감정이고, 딱히 감정이 있기보단 그 때 만큼은 미친 듯이 좋았으니까,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어제, “(멤버에게 잊혀짐에 있어) 기대 안한다고 해도 찍덕하다보면 탑시드가 부럽고, 짧은 시간에 확 잊히니까 덕질 할 맘이 안 났다”고 했는데 잊혔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

   “행사 미친 듯이 다니고, 그 많은 인파 중 방방 뛰어서 티를 내도 알아봐주지 못한다. 멤버들에게 눈도장 찍을 좋은 기회가 팬사인회라 팬사인회 컷수가 높아지게 된다.

   ‘아츄’, ‘데스티니(2016. 4)’ 시절 만해도 컷수가 지금처럼 높은 시절이 아니었으니, 무리 없이 다 다녔지만 그 후 ‘와우’컴백부터 컷이 오르고 4번 응모했지만 한 곳 빼고 다 떨어졌다. 멤버들 기억에 남아서 알아주면 행사에서도 그 많은 무리 중에서도 콕 찍어 알아봐주고 눈 맞춤도 해주고……. 찍덕 입장에선 사진 찍을 맛이 난다.(웃음)

   하지만 러블리즈가 팬사인회에서 한 두 사람 만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을 상대해야 하니 공백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잊히게 된다. 전엔 눈 맞춤도 잘 해주고 이름, 아이디도 기억해주고 어디서 봤는지 기억 하지만 조금만 느슨해져도 멤버들이 쉽게 잊어버린다.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팬이 아니라면. 멤버 생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선물도 주는 팬들이야 몇 번 안 보더라도 기억에 남지만 난 그 정도가 아니라.

   어렵게 ‘와우’ 시즌에 탈락을 거듭하다 팬사인회를 가게 됐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마음에 앞 순번과 번호표도 바꿔서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한 번 안 봐주더라, 케이가. 심지어 팬사인회 진행 중에 대화할 때에도 ‘어? 저번에도 오신 분 아니셨나요?’하니까 그동안 쌓았던 애정이 확 무너진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하기에 덕질(팬 활동 전반)에 환멸을 느낀 이유가 러블리즈 때문인지, 팬덤 때문인지. 둘 다 포함한 복합적 문제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러블리즈 멤버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팬 차별한다는 팬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순전히 울림엔터테인먼트에 화가 나서 탈덕(脫-)했다.

   케이가 날 알아주지 못해서 쏟은 애정을 생각하면 허탈하지만 애초에 멤버들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고자 덕질과 찍덕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케이에게 선물도 주고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다 했겠지.

   다른 아이돌그룹 팬덤을 모르지만 러블리너스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일명 코어 팬들이 중심이 돼 이들을 넘기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연령층도 높은 편인데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충성도도 대단해 울림이 이를 이용하는 것 같다.

   팬사인회 컷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요새 보면, 얼토당토 않는 시즌그리팅 팬사인회니, DVD팬사인회니 하던데, 냉정하게 러블리즈가 트와이스, 블랙핑크처럼 크게 성공한 그룹은 아니잖은가. 러블리즈가 비 활동기일 때, 심심해서 라붐이나 구구단 팬사인회를 가봤다. 그들은 컷도 많아야 5장 정도고 자신들의 위치를 알기에 허용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팬들에게 개방한다. 내가 찍덕인 만큼 놀랐던 건 팬사인회 진행 중 사진 촬영의 자유였다.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러블리즈 팬사인회는 촬영이나 룰에 엄격하다. 팬사인회 컷은 치솟고, 들어가는 돈은 늘어나는데 그럴수록 팬들을 압박하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좋아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덕질하며 환멸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다가 ‘와우’ 팬사인회 가서 처음으로 경험했는데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 이 돈 내고 여기서 뭐하는 건가’하는 느낌. 네 번 응모해서 세 번 떨어져 한 번 갔으니까.

   결국 덕질에 환멸을 느끼게 된 건, 울림이 팬들에게 하는 강압적 조치들 때문에 현실적 상황에 눈을 뜬 거다. 내가 백만장자도 아니고, 시간 남아도는 사람이 아닌 이상 덕질은 나한테 더 이상 무리구나, 하는 그런 현실적인 직시.”



찍덕이 되기까지,

가벼운 팬심에서 시작한 팬 활동,

실물을 처음 보게 됐고 음악이 좋아 끌리게 돼


미친 듯이 찾아다니며,

2016년 한 해는 행사라면 거의 다 찾아간 듯…

찍은 사진 중 80%는 케이였다


탈덕하며,

러블리즈·팬덤보다, 회사가 탈덕 이유…

타 그룹에 비해 제한적이고 강압적이다



─콘서트의 경우 ‘개인 멘트’를 통해 솔직한 입장을 밝히곤 한다. 지난 2월, ‘이상한 나라의 러블리즈2’콘서트에서 지애가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자신을 위해 살겠다”고 했고, 베이비소울은 “팬들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팬들을 아껴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찍덕 활동하던 때에도 솔직한 고백이 있었나.

   “내가 아는 한에서 답하자면 개인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울림에서도 단속하겠지만 ‘러블리즈 다이어리’ 시리즈를 보면 비활동기에 접어들 때, 마지막 편에서 멤버들은 항상 ‘빨리 돌아올 테니까 러블리너스 분들 딴 데 가시면 안 돼요!’ 멘트였다.

   지금이야 성공적으로 단독콘서트도 개최했고, 나름 충성도 높은 팬층을 유지하지만 데스티니 때만하더라도 러블리데이라는 미니콘서트가 다였고, 그마저도 무대와 이벤트성 진행이 전부였다. 이 땐 저런 말을 할 정도로 기반이 다져지지 않았으니,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솔직한 개인적 발언을 할 수 있었겠나. 오히려 독이 될까봐 못하지 않았을까.”


─러블리즈 초심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보는가. 성숙해서 초심이 더 굳어졌는지, 아니면 초심을 잃어 부패한 건지.

   “탈덕한 지 1년가량 지났고, 현실에 충실하느라 담 쌓으며 지냈지만 그래도 러블리즈 노래는 항상 듣고 있다. 1년 동안 러블리즈가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도 하며 결실을 맺었지만 냉정하게 말한다면 최정상급 아이돌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코어 팬 층이 빠지지 않고, 유지되는 현 상황은 1위와 상관없이 데뷔 때부터 유지하고 있는 음악 컨셉 때문이지 않을까. 음악성에 끌려 러블리즈를 좋아하는 건 많은 러블리너스가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성적과 상관없이 일관되고 이어져오는 음악컨셉에 윤상 역할이 크다. 이는 팬덤 유지하는데 큰 장점이기도 하다. AOA는 여성밴드 콘셉트로 데뷔했지만 섹시 콘셉트로 뜨게 된 케이스 아닌가. AOA에겐 성공의 전환점이지만 러블리즈에게 콘셉트 전환은 재앙이 될 테다.

   윤상이 프로듀싱하는 동안 현재의 청순 콘셉트로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울림 역시 콘셉트 전환은 독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다. 러블리즈는 초기 콘셉트를 아직도 유지하면서 그 초심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러블리즈를 만났을 때 느낌은 어떤가.

   “바쁘게 살면서 거의 잊고 지내서 그 때 감정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멤버들에 대한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케이마저도.

   보통 악개(인터넷 용어: ‘악성 개인 팬’을 의미하는 자조적 단어)들이 그렇듯, 최애 말고는 신경을 거의 안 쓴다. 멤버들하고 형식적 인사와 대화한 게 전부이기도 하고, 대부분 팬들이 아는 수준, 미주는 흥이 많다는 것만.

   케이를 떠오르면, 물품 선물보다 사진 선물을 더 좋아하던 애였던 것 정도? 본심이 아닐 수 있지만 선물하는 팬을 배려해 노력하는 모습이 케이를 좋아했던 한 이유 같다. 선물한 액자들 다 집에 걸어뒀다고, 언젠가 스마트폰이 생기면 인증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보지 못해 아쉽다.

   타 팬덤과 비교를 질문했는데, 애초에 다른 팬덤과 어울리지 않아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답한다면 좀 극성맞고 유난스럽다는 것? 저녁 8시에 있는 행사를 새벽에 가도 1열로 갈 수 없다는 게 충격이다. (웃음)

   오프라인 행사에 고정으로 오는 러블리너스의 경우 20대 후반 이상 되는 분들이 많아 행사관련 협조라든지 통제가 잘 됐고 나름 자체적으로 러블리즈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안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탑시드나 찍덕의 경우 누구와 어울리고 그런 건 없었다. 갈 때마다 항상 계신 분들과 인사나 간단한 안부만 묻는 정도고 어울리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관찰한 적도 없고…….

   음, 유독 그런 건 있다. 보통 찍덕과 탑시드는 트위터에서 활동하는데, 같은 러블리너스임에도 러블리즈갤러리와 트위터 사용자와 사이가 안 좋았다. 갤러리는 나름 그들의 룰을 정해놓지만 트위터 팬은 룰에 구애 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멤버에게 어필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이해관계 충돌로 이어진 게 아닐까.”


─사생팬은 존재하나?

   “유명한 사생팬이 한 명 있다. 예인이 팬인데 행사도 매번 오는 편이고, 니트카페(울림엔터테인먼트 맞은 편에 위치한 카페) 앞에서 죽치고 있는 편이다. 매니저를 거치지 않고 1:1로 선물을 전달하려다 불필요한 터치가 있었고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라서 팬 매니저가 블랙리스트에 등록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처리 됐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몰라 자주 보는 팬끼리 노란색으로 염색한 그 사생팬을 ‘노랑머리’로 부르곤 했다. 저 사건 외에 유기견 봉사활동 때(2016. 11. 12), 예인이 근처에서 서성이다 다른 팬과 싸웠고, 그걸 지애가 말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팬덤 안에서 연애에 관해 어떤 의견을 취하고 있나.

   “어느 그룹 팬덤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대체로 부정적 의견이 많겠지. 나라도 케이가 연애한다면 그 즉시 떠났을지도. 탑시드 경우 정신적 충격이 클 테다. 멤버들에게 쏟은 돈과 애정이 얼만데……. 다만, 오프라인 현장에서 팬들 간 나누는 대화에서 금기시 된다. 저런 걸로 말 잘못 꺼냈다간 팬덤 사이에서도 매장당하는데. 항상 조심스럽고 예민한 사안이라 언급할 부분은 아니다.”


   스무 개 질문을 서면으로 답변하며 그가, 러블리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았다. 한 때, ‘미친 듯’ 사랑하며 즐겼던 팬으로서 보여진 건 훗날 단독자로서의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집단에서 경험한 동지적 관계는 늘 그렇게, “그 땐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인터뷰에 응한 그가, 새벽 넘은 시간까지 웃으며 즐거웠던 기억을 회상했다. 오로지 케이는 그에게 행복을 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