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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어쨌거나 “‘학교폭력/디지털 성폭력/무관심’은 나쁘다”:『학교 안에서』

학교 안에서
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0쪽 | 1만1000원

 

소설을 좋아하면서 바뀐 시선이 있다. 글줄이 길면 이걸 어떻게 상상하며 읽어야 할까 부담감이 앞선 나머지. 인물 묘사, 심리, 상황과 배경을 녹여낸 글줄이 싫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예의 갖춘 독백을 접하며 부담감은 기대로 바뀌었다. 구매할 책을 고를 때, 대화보다 글줄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얼마나 글줄이 아름다운지를 먼저 살핀다.

 

도입은 좋았다. 학교를 폭파하려는 테러범에 맞선 힘없는 경찰과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 갇히고 만 학생들과 교사라는 설정 속에 앞으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좋다. 부실한 대화, 어설픈 설정. 메시지는 명확하다. ‘학교 폭력은 나쁘다.’ 학교폭력 피해자 진술을 적절히 가공해 나열하는 의무교육과 다르지 않았다. 나쁘긴 나쁘지만 현실의 역학 관계 속에서 피해자를 도울 실제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소설 속 캐릭터가 맞닥뜨린 고통의 내러티브도 클리셰에 가깝다. 정말 비극적이고 정말로 힘든 건 맞지만 전혀 동정이 가지 않는다. 가공된 느낌에 과다하게 소스를 버무린 느낌이다. 개연성이 없다는 말이다. 여전히 현대사회에서 불거지는 아이들의 비극은 개연성 없이 터지기 마련이지만. 급작스러움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언니가 죽었고, 여교사 한영주는 왕따를 당했다.

 

주인공을 둘러싼 학보사가 아쉽다. 학보사 비중이 크지 않다면 이렇게 설계한 의도를 모르겠다. 학보사가 아니라 방송국, 하다못해 댄스 동아리로 바꾸어도 손색없다. 차라리 댄스 동아리 학생 안과 밖에서 벌어진 성폭력에 주목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글을 다루는 학생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학보사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대화도 어색하다. 친밀한 관계의 티키타카가 아니다. 오글거리는 딱딱한 문체에서 차라리 학보사 담당 교사와 대화하는 게 이보다 더 어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영주라는 교사이자 여성의 심리 묘사는 잘 해냈지만 남성 간의 대화는 미숙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개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집단의 폭력은 나쁘다는 점. 기어이 집단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라는 점. 학교를 부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현실에서 부수지 못하던 무기력이 소설에서조차 계획에서 그치니 매듭 짓지 못한 아픔을 완결하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